여론광장
정조(正祖)의 사인(死因)은 마풍(麻風)인 풍기(風氣)
 김민수
 2013-12-07 16:55:54  |   조회: 6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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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사인(死因)은 마풍(麻風)인 풍기(風氣)


마풍(麻風)인 풍기(風氣)를 앓고 농혈(膿血)을 다출(多出)한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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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6월 14일 정조가 이 달 초열흘 전부터 부스럼이 피부를 파고드는 병인 절후(癤候)가 발병하여 붙이는 약 첩제(貼劑)를 계속 올렸으나 여러 날이 지나도 효과가 없으므로 내의원 제조 서용보(徐龍輔)를 편전으로 불러 접견하였다. 서용보가 안부를 묻자, 정조가 이르기를, “밤이 되면 잠을 전혀 깊이 자지 못하는데 일전에 약을 붙인 자리가 지금 이미 종기가 곪아 터지는 농궤(膿潰)하였다.”하였다. 의관 백성일(白成一)·정윤교(鄭允僑) 등을 불러들여 약을 붙였던 자리를 진찰하도록 명하고, 분부하기를, “어제에 비해 좀 어떤가?”하니, 정윤교가 아뢰기를, “독기는 어제보다 한층 더 줄어들었습니다.”하고, 정조가 이르기를, “무슨 약을 붙여야겠는가?” 하니, 정윤교가 아뢰기를, “근(根)은 없지만 고름인 농즙(膿汁)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지고(荔枝膏)가 고름을 빨아내는 데는 가장 좋습니다.”하고, 정조가 이르기를,“터진 곳이 작으니 다시 침으로 찢는 것이 어떻겠는가?”하니, 정윤교가 아뢰기를, “이미 고름이 터졌으므로 다시 침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하고, 정조가 이르기를, “등쪽에 또 종기 비슷한 것이 났는데 지금 거의 수십 일이 되었다. 그리고 옷이 닿는 곳이므로 마독(麻毒)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하였다. 이어 정윤교 등에게 진찰해 보도록 명하고 분부하기를, “무슨 약을 붙이는 것이 좋겠으며 위치는 그리 위험한 곳이 아닌가?”하니, 정윤교가 아뢰기를, “위치는 위험한 데가 아니고 독도 없습니다만, 근이 들어 있으니 고름이 생길 것 같습니다.”하고, 백성일은 아뢰기를, “웅담고(熊膽膏)를 붙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하였다. 정조가 이르기를, “웅담고도 효과가 없을 것 같다.”하니, 정윤교가 아뢰기를, “수도황(水桃黃)은 독을 녹이는 약입니다.”하고, 정조가 이르기를, “두통이 많이 있을 때 등쪽 배부(背部)에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인 격화(膈火)때문이다.” 하였다.


6월 25일 약원(藥院) 제신을 불러 접견하고, 정조가 이르기를, “심인(沈鏔)과 정윤교(鄭允僑)를 들어오게 하라. 밤이 깊은 뒤에 잠깐 잠이 들어 잠을 자고 있을 때 피고름 농혈(膿血)이 저절로 흘러 속적삼에 스며들고 요자리에까지 번졌는데 잠깐 동안에 흘러나온 것이 거의 몇 되 수승(數升)이 넘었다. 종기 자리가 어떠한지 궁금하므로 경들을 부른 것이다.”하였다. 제신이 진찰한 뒤에 아뢰기를, “피고름 농혈(膿血)이 이처럼 많이 나오는 다출(多出)하였으니 근이 이미 다 녹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들의 반갑고 다행스러운 마음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원기를 보충하는 면에 한층 더 유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붕어를 고은 국물인 부어고(鮒魚膏)를 약원(藥院)에서 봉하여 올리겠습니다.”하였다.이시수가 아뢰기를, “피고름이 완전히 나은 뒤에는 구미도 반드시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은 성상의 병세가 이미 나아지고 있는 상태이니 그야 물론 머지않아 쾌차하실 것입니다만 이러한 때의 조리는 한층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날 것과 찬 것을 드신다거나 찬바람을 쏘이는 일을 깊이 경계하셔야 하며, 신경을 너무 지나치게 쓰는 것은 이와 같은 종기에 더욱 해로운 법이니 바라건대 더욱더 유의하시어 모든 일에 반드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도록 힘쓰소서.”하였다.


정조가 이르기를, “각신들 중에 오늘 새벽 연석에 들어오지 않은 자는 이 쪽으로 와서 이부자리의 고름이 젖은 곳을 살펴보도록 하라.”하니, 신하들이 앞으로 나가 살펴본 뒤에 서로 돌아보고 기뻐하며 아뢰기를, “피고름 농혈(膿血)이 다 나왔으니 근이 녹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사스럽고 다행하기 그지없습니다.”하였다.정조가 이르기를, “고름이 많이 나와버렸는데 오히려 당기는 증세가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하니, 심인(沈鏔)이 아뢰기를, “이미 흘러나온 피고름이 많아 지금 남은 것은 약간의 찌꺼기뿐인데 그 것도 차츰 이어서 나올 것입니다. 종기 증상은 이미 나아가고 있으나 남은 기운이 어찌 당장 없어지겠습니까.”하고, 이시수(李時秀)가 아뢰기를, “신들이 조금 전 연석에서 물러나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 축하하였습니다. 이 번에 나온 피고름은 아무리 원기가 강장한 사람이라도 이처럼 많은 피를 흘리고 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인데 성상의 건강을 살펴볼 때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약의 힘이 비록 독하더라도 원기가 튼튼하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뽑아낼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정조가 이르기를, “몸을 움직이는 것은 조금 낫고 어깨죽지 견갑(肩胛)의 부은 곳도 조금 가라앉은 초저(稍低)한 것 같긴 하나 주변의 작은 종기인 절(癤)들이 한덩어리를 이루어 바가지를 엎어놓은 부표(覆瓢)한 것 같아 잡아당기는 견인(牽引)하는 증세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피고름 농혈(膿血)이 많이 나온 뒤라서 뱃속이 필시 허약할 것인데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 무엇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열기는 참으로 견딜 수가 없으니 이 것은 특별한 증상이다.식전에는 조금 나은 것 같았으나 오후에는 구미가 완전히 변해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이 것은 순전히 열증세인데 요즘은 입안이 마르는 일이 없으므로 찻물인 다수(茶水)도 찾아 마시지 않으니 이 또한 이상하다.”하였다.


6월 28일 왕대비가 승전색을 통해 분부하기를, “주상의 병세는 마풍(麻風)인 풍기(風氣) 같은데 대신이나 각신이 병세에 적절한 약을 의논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만 있으니 무슨 일이오.”하니, 좌의정 심환지가 회답하기를, “이제는 성상의 병세가 이미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 천지가 망극할 뿐 더 이상 아뢸 말이 없습니다.”하고, 왕대비가 또 분부하기를, “선조(先朝) 병술년에 주상의 병환이 혼미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하루 밤낮을 넘기고 다시 회생하였으며 갑오년에 또 그와 같은 증세가 있었으나 결국 회복하였소. 지금은 주상의 병환이 위독한 지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 무슨 말이오.”하니, 심환지가 또 회답하기를,“지금 또 병세에 맞는 약을 계속 올려드리고 있습니다.”하였다. 제조 김재찬(金載瓚)이 인삼차와 청심원을 받들고 들어왔으나 정조는 역시 마시지 못하였다. 도제조 이시수가 왕대비에게 들어가 여쭙기를, “인삼차에 청심원을 개어서 끓여 들여보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드실 길이 만무합니다. 천지가 망극할 따름입니다.”하고,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왕대비가 분부하기를,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시오.”하므로, 심환지 등이 명을 받고 잠시 문 밖으로 물러나왔다. 조금 뒤에 방안에서 곡읍(哭泣)하는 소리가 들렸다.
2013-12-07 16: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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