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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친왕(完親王Wanchinwang) 이선(李墡Iseon)
 김민수
 2016-05-19 14:51:00  |   조회: 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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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친왕(完親王Wanchinwang) 이선(李墡I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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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윤4월 10일 고조가 전교하기를 "오늘 진시(辰時)에 궁인(宮人) 이씨(李氏)가 아들을 낳았다. 산모를 보살펴주는 호산(護産) 등의 일을 운현궁(雲峴宮)에서 대령하라."하였다.윤4월 16일 영의정(領議政) 정원용(鄭元容)이 아뢰기를 "오늘은 바로 왕자가 출생한 지 7일이 되는 날이니, 근본과 지엽이 백대토록 이어질 터전이 오늘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또 올 해는 우리 자성 전하(慈聖 殿下)께서 환갑 보갑(寶甲)을 맞는 경사스런 해입니다. 우러러 기쁨을 드리게 되어 더욱 기쁘고 감축하는 마음 절실합니다."하니 고조가 하교하기를 "자전(慈殿)께 기쁨을 드리게 된 것이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하였다.경복궁의 중궁전인 교태전(交泰殿) 남쪽 행각의 서편에 있는 보선당(補宣堂) 편액(扁額)은 1868년 탄강한 고조의 장자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을 피휘(避諱)하여 '천지의 마땅함을 보상하다'는 뜻으로 주역의 '보상천지지의'(補相天地之宜)에서 취한 보의당(補宜堂) 편액(扁額)을 현액하였고 동궁전 함원전(含元殿) 서쪽 행각에 있는 자선당(資善堂) 편액(扁額)은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을 피휘(避諱)하여 자안당(資安堂) 편액(扁額)으로 현액하고 융화당(隆和堂) 편액(扁額)은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을 피휘(避諱)하여 융화당(隆化堂) 편액(扁額)을 현액하였다.









1876년 4월 10일 고조(高祖1863-1919)가 전교하기를 “왕자 이선(李墡Iseon)을 완화군(完和君)으로 봉하라.”하였다. 완화군(完和君Wanhwagoon) 이선(李墡)을 영종정 경(領宗正 卿)에 단망(單望)으로 관직에 임명하는 단부(單付)하였다. 1877년 10월 13일 고조가 전교하기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이 이 번에 진찬(進饌) 때에 응당 들어와 참가하도록 하고 관례(冠禮)의 길일(吉日)은 오는 12월 10일 이전으로 택하여 들이라.”하였다. 10월 16일 전교하기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의 관례(冠禮) 때 주관할 사람은 종정 경(宗正 卿) 이재면(李載冕)으로 하라.”하였다. 11월 3일 전교하기를 “이 번에 진찬(進饌)할 때 2작(爵)을 더 마련할 것이며 네 번째 잔은 종친(宗親)의 반열의 제일 앞에 서는 반수(班首)인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이 올리고 다섯 번째 잔은 내관(內官), 궁관(宮官)과 대전 유모와 왕비의 모친, 왕녀(공주나 옹주), 왕세자녀, 종친의 처, 문무관의 처인 내외명부(內外命婦)의 반수(班首)가 올리게 하고 반찬의 가짓수도 역시 매 찬마다 세 그릇씩으로 하라.”하였다. 11월 25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의 관례(冠禮)를 거행할 때 주관자에 이재면(李載冕), 빈(賓)에 조병세(趙秉世), 찬(贊)에 김철희(金喆熙), 찬관(贊冠)에 조운긍(趙雲兢), 집관(執冠)에 김병휴(金炳休)를 모두 단부(單付)하였다. 12월 4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의 관례(冠禮)를 행하였다.



​1880년 1월 12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이 졸서(卒逝)하였다. 고조가 전교하기를 “완화군(完和君)의 죽음은 슬프고도 슬프다. 예장(禮葬) 외에 필단(疋緞), 미포(米布) 등의 물건을 연령군(延齡君)의 전례(前例)에 따라 실어 보내고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골라 보내며 녹봉(祿俸)은 3년에 한하여 그대로 지급하라. 시호(諡號)를 주는 의식은 명정(銘旌)을 세우기 전에 하고 성복(成服)하는 날에는 종신(宗臣)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고 제문(祭文)은 문임(文任)으로 하여금 짓게 하며 중사(中使)를 보내서 호상(護喪)하게 하라.”하였다. 호조(戶曹)에서 ‘이 번 완화군(完和君)의 상사(喪事)에 필단(疋緞), 미포(米布)를 연령군(延齡君)의 전례대로 보내라고 명을 내리셨는데, 삼가 등록(謄錄)을 상고해 보았으나 참고될 만한 것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고 아뢰니 고조가 전교하기를 “전칠(全漆)과 매 칠(漆)을 각각 5승(升), 각 색 비단 10필(疋), 돈 5,000냥(兩), 백미(白米) 50석(石), 포목(布木) 각 5동(同)씩을 실어 보내라.”하였다. 1월 13일 완화군(完和君) 이선(李墡)에게 ‘효헌(孝憲)’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1907년 10월 1일 대리청정하는 황태자(1919년 1월 황제 등극한 @종 @@제) 이척이 정사(正使) 완평군(完平君) 이승응(李昇應)과 부사(副使) 정2품 조동희(趙同熙)를 보내어 완친왕(完親王Wanchinwang)을 추봉(追封)하고 이승응(李昇應)에게 치제(致祭)하라고 명하였다.
2016-05-19 1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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