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해방 이후 최대의 인파
 경찰백만
 2017-04-17 01:56:41  |   조회: 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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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秀 박사는 李承晩 대통령이 국민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국민들께 남기는 유언이라고 하셨어요.

다시 나라를 잃고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제적, 문화적 침략에 대비해 정체성을 해칠 노예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해가 운구되고 이화장에 빈소가 마련되자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장례식 때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참배를 하는 바람에 이화장 담이 무너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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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경은 .... 고 이박사의 장례행렬을 보러 나온 서울 시민의 수를 1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 해방 이후 최대의 인파 ........... ]



1965.7.27.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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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정오 무렵 정동 교회에서 나와 동작동으로 향해 떠난 영구차는 시청앞에 모인 약 35만명(경찰 추산)의 인파로 막혀 한동안 나아가지 못하다가 낮 12시 25분경 길이 트여 남대문쪽으로 빠져 나갔다. 시청앞에서 있을 예정이던 이 박사의 녹음 방송 등 일반 시민과의 고별절차는 취소됐다.


연도


ㅇ 이화동 입구에서부터 광목줄로 영구차를 매어 앞뒤로 사방에 남녀 90명씩 7백 20명의 남녀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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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종로 5가 로타리에는 수천 시민이 운집해서 교통은 완전두절, 종로에 접어들자 영구행렬은 제대로 틀이 잡히기 시작 , 호상 변영태 씨가 선두에 섰으며 그뒤에 태극기 초상화 행장 만장을 든 배재중학생들 해군조악대에 이어 영구차가 따라 영구차량쪽에는 2대의 경찰 백차와 기마대가 호위했다.


국립묘지


ㅇ 삼각지에서부터 차로 운구하려던 예정을 바꾸어 영구행렬은 계속 도보로 오후 2시 40분 한강 인도교를 통과 , 3시반경 동작동 국립묘지에 도착하여 용사문 앞에서 정부 주관으로 영결식을 가졌다.이 식전에서 박치순 목사의 기도와 박대통령의 조사(정총리 대독)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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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최대인파


연도의 만송시민
경찰은 백만추계


서울시경은 27일 고 이박사의 장례행렬을 보러 나온 서울 시민의 수를 1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 해방 이후 최대의 인파라고 밝히고 이날 연도 경비를 위해 관하 3천명의 경관을 동원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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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는 달리 이박사 장례식행렬이 세종로 그 자리를 지나갈 때의 연도광경은 그의 영구가 하와이로부터 돌아 오던 그날의 성관보다 한층 장관을 이루었다. 이박사의 사면초상화를 앞세운 그뒤로 5백여개를 헤는 만장과 4백여개의 조화대열 그리고 소복에 상장을 두른 수천백명의 남녀수상객과 악대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황국 꽃으로 뒤덮힌 영구차 그만하면 고 우남에게 영광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국장은 그 보다 더 성할 것이며 국민장인들 그 이상 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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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의 서울인구는 3백8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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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분향 늘어


[중앙일보] 입력 1979.11.02




고 박정희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전국의 분향인파는 1일까지 1천3백28만7천명(내무부집계)에 이른다. 1일 하룻 동안의 분향자수는 3백82만8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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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1522786







* 1980 南韓人口(남한인구) 37,448,836명








[ ..... 영결식 당일(1979년.11월3일)에는 광화문 인근에만 200만명이 모였다 ....... ]




연합뉴스

장례식 조문 최대 인파는?


기사입력 2009-02-19




김구 200만 훌쩍..박정희는 추산 불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6일 오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가 요구된다. 명동성동에 진입하기 위한 조문행렬은 통상 2~3㎞ 정도. 특이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추모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19일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조문 첫 날 1천500명으로 '단출하게' 시작된 조문객 수는 17일 9만6천500명, 18일에는 15만2천500여명으로 급증했다.

이 때문에 2-3시간은 기본이고 많게는 5시간을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을 감수해야 김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다리에 쥐가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등 '기다리는 사람들'은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10초라는 짧은 조문시간을 위해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적으로 추앙받았던 다른 저명인사의 장례식에는 어느 정도의 인파가 몰렸을까.


조계종에 따르면 지난 1993년 열반한 성철 큰스님의 영결식(11월10일)에는 10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조계종 관계자는 "장례 당일에만 10만여명이 참가한 점에 비춰 7일장으로 치러진 장례 기간에 수십 만명이 다녀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장례가 끝난 후 3주간에 걸쳐 진행된 사리친견법회 동안 40만명이 다녀갔다고 조계종은 밝혔다.




해방 이후 100만 이상의 많은 조문객이 다녀간 경우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의 총탄에 순국한 김구의 장례식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김득중 편사연구사에 따르면 26일 오후 12시30분께 서거한 후 28일 오후 1시까지 약 75만명이 종로구 평동의 빈소인 경교장을 다녀갔다.


김 연구사는 "장례가 10일장으로 치러진 만큼 조문객수는 200만명이 훨씬 넘었을 것"이라며 "영결식 당일에는 인근 상가가 영업을 중지했고, 경교장에서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까지 인파가 가득찼다"고 말했다.




이후 유일하게 국장으로 치러진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 당일(1979년.11월3일)에는 광화문 인근에만 200만명이 모였다.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마련됐고, 장례기간이 9일간 지속됐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은 추산이 불가능하다고 김 연구사는 밝혔다.


또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영결식(1974년 8월18일) 때는 빈소가 마련된 청와대에 10만명이 모였다. 육 여사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5일장이었다.


아울러 국민장으로 치러진 김성수 전 부통령의 장례식에도 전국 각지에서 100만여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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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7 0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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