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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탄 10용사
 육탄 10용사
 2020-12-25 20:25:09  |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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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5.4. 육탄 10용사




[ ...... 실로 무한한 감격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비분에 넘치는 눈물을 어디다가 호소하리요.


오직 10용사의 원수를 갚고 그들이 보여준 길로 38선을 돌파할 것을 ........ ]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산화한 육탄 10용사의 공훈



동아일보,자유신문

1949년 05월 21일




한국을 좀 먹으려던 북한 괴뢰군에 응징의 철퇴는 떨어졌었다. 폭탄을 품에 안고 적 진지에 돌입하여 죽음으로써 전우와 아울러 10만 개성시민을 건져낸 10용사, 그야말로 국군을 수호할 軍神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지난 4일 아침 4시를 기하여 개성(957-1692)지구 정면 38선 경비 인민군 3개 대대 약 2,500여 명은 송악산 연봉 동방으로부터 292·155·유엔·비둘기·140고지까지 약 5㎞에 걸친 산맥에다가 토치카를 축조한 것을 기화로 중화기로 개성시가를 향하여 맹렬한 공격을 개시하여 동일 4시 반경에는 시내 新?지서 후방에 전투태세를 전개하여 155고지와 144고지 등 좌단은 적에 점유당하고 완전한 포위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1949. 5. 21)


하사관교육대는 4일 아침 4시 30분 新館지서 후방에서 전투태세를 갖추어 155고지·140고지 좌측의 적을 격멸 점령하고 동 9시에는 140고지를 완전 점령하였다. 때마침 12시 10분 전투사령부에서 “하사관교육대는 140고지와 비둘기고지·유엔고지를 점령하고 氷庫洞 부근의 적을 분쇄하라”는 무전명령이 있었다.


하사관교육대장 金泳穆대위는 적의 토치카가 단단해서 제1소대장 金誠熏소위에게 명령하여 하사관교육대는 유엔고지에 잔재하는 적의 토치카를 육박으로 분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 비둘기고지에 진격하려 하여도 좌측 뒤에서 맹렬한 집중사격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토치카들을 분노의 모진 눈초리로 보고 있던 제1분대 徐富德2등상사 이하 9명의 용사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제1소대장 金소위에게 특별명령을 명하여 달라고 원하였다. 소대장은 거부하며 자기가 솔선 적진에 돌입하려 함을 보자 徐상사는 소대장을 붙잡고 자기를 보내 달라고 애원하자 소대장은 감격에 못이겨 양보하게 되었다.


12시 45분 비둘기고지 중복을 출발한 9용사는 염마같이 불을 품는 유엔고지 토치카를 향하여 돌진하였다. 14시 5분 黑煙柱와 화염과 木片 등이 반공에 솟아오르며 지축을 흔드는 폭음에 중대장 이하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대원들은 전우의 거룩한 모습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었다. 그 후 마의 유엔고지에 침묵이 계속되었다. 9인으로써 14시 20분 비둘기·유엔 각 고지는 무난히 점령하게 되었다.

(자유신문 1949. 5. 21)



10용사 출신지


△육군 2등상사 徐富德(22) 출생지 전남 나주군 東良面 水山里

△육군 하사 朴昌根(24) 출생지 전남 완도군 魯花面 東泉里

△육군 1등병 金鍾海(20) 출생지 경기도 수원군 東灘面 盤松里

△육군 1등병 黃金載(21) 출생지 전북 익산군 龍安面 法聖里

△육군 1등병 尹玉春(22) 출생지 충남 대전부 文化洞

△육군 1등병 梁用順(22) 출생지 함북 경원군 安農面 士城里

△육군 1등병 吳濟龍(20) 출생지 전북 전주읍 銅岩洞

△육군 1등병 朴平緖(20) 출생지 전남 나주군 公山面 南昌里

△육군 1등병 李熙福(22) 출생지 경기도 수원군 半月面 速達里

△육군 1등병 尹承遠(21) 출생지 경기도 수원군 安龍面 安寧里




蔡秉德육군총참모장 談:육군참모장 채병덕소장은 20일 10군신의 위공을 찬양하는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우리 국군은 여순사건 이래 잔인무도한 반란군과 적화 제패의 음모를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여지없이 분쇄하였다. 특히 白寅基·魏大善 양 대령과 같이 국군의 귀감이 될 만한 우수한 장교의 희생도 있었으나 이번 송악산을 중심한 전투에 있어 서부덕 상사 이하 10명의 용사와 같이 공격정신이 왕성하고 소신에 충실하였으며 군과 민을 위하여 의를 취하고 生을 버리는 위대한 공적을 세운 特功의 전례는 아직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들 10용사야말로 진정 민족의 수호신이요, 국군정신의 금자탑인 것이다. 그들 10용사는 상관의 명령이나 권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진 개공을 자원하였을 때 직속 소대장은 오히려 이를 만류하였다. 생사를 초월하여 조국을 위하여 몸바친 이들의 10용사의 의거는 화랑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우리 신생대한민국 국군에서만 볼 수 있는 새싹이다. 우리 국군은 한걸음 앞선 선배 용사의 정신을 그대로 혈투화해야 될 것이다.




申性模 국방부장관 談:이번 전투에서 적의 강력한 특화점 진지를 돌진 육박하여 적진에 뛰어 들어가 이를 분쇄 격멸함에 성공하여 적으로 하여금 대경하여 격퇴를 여지없이 한 10용사의 충열한 의용이야말로 우리 대한 국군의 화랑정신의 발로로 민족정기를 내외에 선양한 것으로 이 숭고한 10용사의 정신은 영원히 우리 국군의 혈육 속에 계승될 것이며 이 의거를 거족적으로 길이 표창할 뿐더러 그들 유가족까지라도 금후 물심양면으로 적극 원호할 것을 말해 두며 명복을 비는 바이다.



전우 金병사 談:이 장행이야말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다.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한 전우였는데 나도 이들같이 뒤를 따라 오로지 38선 철폐에 뼈를 묻을 것을 이 전우들 영전에게 맹서하며 더욱 더 제1선 군무에 중임을 다할 것을 맹서하는 바이다.


金宗平중령 談:10군신은 애국애족에 불타는 충성으로 귀신도 탄복할 결사필승의 전사가 되었다. 민족을 위하여 공산당 타도에 피 흘린 10군신의 뒤를 따라 동지들은 진충보국의 정신을 계승하여 하루바삐 38선을 깨뜨려 원한을 품고 간 10군신의 혼을 안식케 하며 10군신의 충혼에 보답하자.


崔 11연대장 談:침식을 같이하던 내 병사 가운데 이러한 용사가 있었다는 것은 실로 무한한 감격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비분에 넘치는 눈물을 어디다가 호소하리요. 오직 10용사의 원수를 갚고 그들이 보여준 길로 38선을 돌파할 것을 온 장병이 모두 마음 깊이 새겨 맹서하며 명복을 빈다.


(동아일보 1949. 5. 21)










李範奭 국무총리, 육탄 10용사를 치하하는 담화를 발표



조선일보

1949년 05월 20일




19일 李국무총리는 10용사를 치하하는 如左한 담화를 발표하였다.


“지난 5월 4일 개성사건과 그 뒤에 일어난 춘천과 홍천의 육군 일부 월남사건 및 해군 掃海艇 1척이 불법 나포당한 사건은 모두 계획적·조직적으로 미리부터 이북공산도배의 지령 혹은 직접 행동에 의하여 造出된 사실로써 이는 확실히 內로는 대한민국의 인심을 소란하려 함이며 外로는 대한민국의 외교관계를 불리케 하는 반면에 모국의 외교공세를 유리하게 하려는 음모에서 나온 것이다.


적색괴뢰의 匪賊은 약 2,000의 대부대를 가지고 불법 점거하고 있던 38선 이남에 속한 송악산고지로부터 濃霧를 이용하여 일거에 개성시가를 엄습하려고 한 것이니 이 때에 만약 국군의 과감 민첩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 결과는 최소한 개성지구의 일대 혼란과 다수 양민의 피해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일발의 순간에 우리의 忠勇한 徐富德 외 9명의 10용사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돌입하여 견고를 自誇하는 토치카와 중병기를 파괴함으로써 아군의 역습진격을 유리케 하여 단시간 내에 적을 退散시키었다. 그리하여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생활·재산을 비적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하였고 국제적으로는 대한민국이 능히 자력보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10용사의 충렬 위대한 공훈은 건국청사에 찬연히 빛나려니와 특히 우리의 10용사는 소위 왜적의 육탄 3용사와 같이 명령에 의한 결사대가 아니요 전술상 필요를 통감하고 자진하여 살신성인한 것이니 그들의 충용한 행동이야말로 국군의 楷模이며 조국수호의 精華라고 할 것이오 세계만방에 자랑하여 대한남아의 기백을 선양하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나는 국군이 조직된 지 불과 반 년에 이와 같이 우수한 군인을 내게 된 것은 우리 국군의 왕성한 사기의 상징인 동시 교육의 철저 적절함을 증명함이니 이에 관계 장병에게 치하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10용사의 영령은 전 민족의 崇尊하는 대상이 될 것이며 그 유가족은 정부에서 최선의 구휼을 圖할 것이다.


끝으로 10열사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육탄 10용사, 師團葬 거행




동아일보

1949년 05월 29일




이 땅이 낳은 민족정의의 화신 10용사의 거룩한 죽음은 화랑의 정신 속에 핀 한 떨기의 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대의의 죽음속에 영원한 생을 택한 그 장지는 민족만대의 귀감이요, 후세에 길이 빛날 민족의 정화이다. 남아로 태어나 나라를 위하여 몸을 초개와 같이 바친 10용사의 충렬이야말로 길이 청사에 남을 것이요, 이들이 남긴 그 교훈을 이 땅 민족은 영원히 살리어야 할 것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여 온 국민은 모두 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평화통일의 길로 총진군하고 있거늘 끝까지 동족의 유혈을 아끼지 않고 이 신성한 국가성업을 저지하려는 소위 괴뢰군은 갖은 악착한 만행을 다 감행하여 왔으나 정의의 보도로 그들의 소행을 방임치 않고 드디어 우리가 가진 기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바로 徐富德 외 9용사의 의거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 숭고하고도 고귀한 이 땅 민족정신을 몸소 시범한 10용사의 ○○주의 제1사단 장의식은 날도 맑게 개인 28일 하오 2시부터 성동원두 서울운동장에서 申국방장관 이하 각 장병을 비롯한 내외 각계 유지와 이들 유훈에 명복을 빌기 위하여 입추의 여지없이 운집한 일반 민중들이 참열한 가운데 정면 단상에 안치된 10용사의 ○○주의 유해가 자리잡은 좌우에 유가족들이 각각 자리잡고 식은 정각부터 李소령 사회하 정중한 군악대의 주악에 이어 전반 장병에 대한 묵상과 영령에 대한 경례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난 제11연대장 崔慶祿중령으로부터 당시의 전투경과 보고와 상주인 金錫源대령의 조문과 신장관을 위시로 한 각계로부터 4일 아침 4시반 개성전투에서 뜻하지 아니한 공비 약 2,500여 명이 일거 개성시가를 향하여 무차별한 폭탄과 소총사격을 감행하여 일시 10만 시민을 혼란케 할 뿐더러 대다수의 전우가 적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달은 하사관교육대원 서부덕을 비롯한 金鍾海·黃金載·尹玉春·梁用順·吳濟龍·朴平緖·李熙福·尹承遠 등 10용사가 각각 자진하여서 위경을 살리고자 57파운드의 유탄을 각각 몸에 지니고 목전 100여 미터에 달하는 것을 적탄우를 무릅쓰고 돌진하여 적진 토치카에 돌입, 포성과 같이 공중에 재가 되어 날라버린 각 용사들의 찬사를 표하는 마디마디 뼈저린 조문이었고 다시 아악대의 弔樂과 동시에 학생들의 성의를 다한 ‘10용사 노래’ 합창에 따라 제1사단 장병들의 조포 3발포와 金제1사단 참모장이 영전에 우리의 맹서를 표한 후 뜻깊은 장의식은 엄숙 성대히 진행되었다.


식이 끝나자 각 육해군 전우들의 품에 각각 안기어 서울운동장을 거쳐 을지로를 통하여 남대문을 나가 다시 안국동으로 태고사에 일단 안치되었다가 교통부에서 특히 준비한 특별열차로 각각 고향으로 무언의 귀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하며 식에 참석하였던 유가족들은 굳센 표정을 지으며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참으로 장하였다. 내 아들들이 이같이 국가를 위하여 씩씩하게 싸워 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 이 영령들을 위하여 이처럼 성대히 베풀어 주신 여러분들의 이 뜻은 더욱 마음에 새기어 후손들도 이들과 같이 훌륭한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충심으로 감사를 올리나이다.



송악산에 흘린 피 헛되지 않게 받들리다, 申장관 弔辭



“개성지구 전투에서 김중령 대대장 이하 39주 특히 10용사를 주로 한 제1사단장을 거행함에 있어 국방장관 申性模는 삼가 영령에 고하나이다. 5월 4일 송악산 부근의 전투는 전에 보지 못한 대규모하고도 격렬한 것이었는데 제11연대 장병들은 불법 월남한 공비들에 선전하여 개성 주민들의 생명재산을 모두 보호하였습니다.


특히 이 전투에 있어 폭탄을 안고 산화한 10용사의 정기는 화랑도 정신의 발로로써 실로 국군의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혈관 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는 정신을 또다시 중외에 선양한 것으로 한국의 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더구나 용사들 유가족에 대하여서는 거족적인 원호운동과 국군으로서도 최선을 다할 것을 고하나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평화통일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금후 이들이 다시 반성하지 않고 불법행동을 감행할 때는 눈물을 머금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뒤에 남은 우리들도 조국통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것을 이에 엄숙히 맹서하오니 고천의 영령이시어 ! 명목하시고 호국의 신이 되어 민족숙원 달성을 보호하소서.“










제3회 13차 국회본회의, 육탄 10용사에 대한 감사결의안 채택



제3회 국회속기록 제13호, 256쪽

1949년 06월 06일




육탄 10용사의 충혼에 대한 감사문




장렬하다. 10용사 육탄으로 적진을 분쇄하여 살신성인의 의용을 천추만대에 빛나게 하였구나. 이는 곧 배달민족 반만 년 脈脈히 뻗쳐 내려오는 精華이며 한데 뭉친 민족정기의 발로의 光輝로다. 우리 화랑도를 계승하는 국군정신의 정화로 만민의 찬양함을 금치
못하노라.



鳴呼라 10용사 국군정신의 화신. 대적하여 奮戰한 나머지 몸은 비록 죽었으나 조국의 軍神이로다. 우리 대한민국에 영원불멸의 정의의 봉화일 것이다. 10군신의 엄연한 가호가 우리 무적 국군에 엄연히 존재하여
있도다. 이를 범할 자 어찌 있으며 이에 대적할 자 또 어디 있으랴.


우리 3천만 동포는 10군신을 귀감으로 대동단결 오로지 掃共保族 국가 초석 수호함에 결사 총진군을 期하여 10용사의 영령에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1955



육탄 10 용사 현충비



● 위치 :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
● 건립일자 : 1955.5.4.(1978.5.4.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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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건립취지 및 유래



육탄 10 용사가 이룬 공을 추모함은 물론 그들의 명복을 빌고 그 거룩한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10용사 현충비 창립위원회가 결성되어 이 비를 세웠다.


당초 이 비는 1955년 5월 4일 흑석동 강변에 건립되었으나 비가 있던 자리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1978년 5월 4일 국립묘지 관내의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육탄10용사 : 소위 서부덕, 상사 박창근, 상사 황금재, 상사 윤옥춘, 상사 윤승원, 상사 김종해, 상사 이희복, 상사 오재룡, 상사 양용순, 상사 박평서)



ㅇ 비문 내용



해방이후 38선으로 말미암아 국토가 분단되어 오던 중 단기 4282년에 이르러서는 개성 서북방 송악고지에서 공산 북한군이 불법침입하여 방위가 불리하고 개성이 위태로우매 동년 5월 4일 제1사단 11연대 소속 서부덕 소위 이하 9명의 용사는 화랑정신을 받아 조국애와 민족정기에 불타는 정열로 몸에 포탄을 지니고 지하참호속에 뛰어들어 육탄 혈전 적진을 분쇄하고 옥으로 부서지니 멸공전 사상에 이룬 공과 그 용맹이 널리 세계에 퍼지다.



광음이 흘러도 잊음없이 명복을 빌고 그 영령을 추모하고자 이에 눈물과 정성으로 현충비가 서나니 이는 조국수호의 정신을 청사에 새기고 만대에 전함이라.



10용사 영혼 불멸하여 겨레와 함께 살며 길이 빛나리로다.









1980



육탄 10 용사 충용탑



● 위치 :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 산 42

● 건립일자 : 1980.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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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건립취지 및 유래


위대한 군인정신과 애국충정을 호국의 군신으로 청사와 후세에 영구불멸히 새겨 두고자 육군 전 하사관 후원으로 이 탑을 건립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새겼다.



ㅇ 비문내용



解放이 되자 40년의 슬픔이 가고 瑞光이 비치던 날, 江山에 검은 구름이 도니 38선상의 옥운이리라. 온 세계가 하늘이 주신 나라, 民國을 공인하여 국위가 四海에 빛나며 옥운을 쓸어 버리라는 獨立의 새벽 밝아오는데 半萬年 歷史의 혈조에 누가 독을 부었느뇨 ?


독은 퍼져서 강토를 주고 政權을 얻어 민족의 살을 삼키려 할 제 民族의 精氣 장하다. 예명같이 국군의 심장에 모여 피로 엉키고 뜻으로 뭉쳐 영생하는 無窮花꽃을 피우려 하거늘 同族으로 외적같이 총검을 들고 어둠을 타서 殺人과 放火를 꾀하는 불의의 무리, 난동하는 斷末魔앞에 國土의 安全을 보장하고 民族의 英譽를 보존하며 민국의 역사를 보호하는 불멸의 靈魂, 그대 이름 十勇士이니 아버님을 돌아보지 않고 어머님을 생각지 않고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丹心, 푸른 하늘을 우러러 가슴에 폭탄을 안고 몸과 함께 적진속에서 폭발한


아! 그대들은 민족 최초의 감정의 표현이요, 民族 最後의 精神의 化身이니 역사의 아버지와 어머님, 아들과 딸 또한 모든 未來의 將兵들도 모두 그대의 뒤를 따라 끝없는 行進을 계속하리니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영원토록 그대의 가슴속에서 그대의 피를 받아 이 江山, 이 國土를 지키고 사랑하며 빛내리라.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4431544


http://www.youtube.com/watch?v=DLh6LYNuG0U




○ 6.25의 노래 ○


6.25노래 / 박두진 작사 / 임동진 작곡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에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 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 도적 오랑케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씻으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에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 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의 그날 까지 싸우고 또 싸워서 다시는 이런 날을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에 무리 쫓고 또 쫓아
최후의 순간 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우리의 맹세>



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다.

둘: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셋: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 완수하자.




'우리의 맹세'는 1949년 7월 당시 문교부가 제정하였다.

이 맹세문은 각급학교 교과서에는 물론이고, 모든 서적의 맨 뒷면에 어김없이 인쇄되어 있었다.
2020-12-25 2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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