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마지막회)
바리공주(마지막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1.24 00:00
  • 호수 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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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남희, 그림/정미라

   
아이가 연서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연서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아이는 격하게 부인했다.

‘아냐!’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연서의 뜻 모를 미소였다.

‘거짓말.’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아냐! 니가 뭘 안다구 큰소리야!’

연서도 맞받아 쳤다.

‘알아!’

그녀의 입가에 고소가 그려졌다.

‘나도 친부모한테 버림받았으니까.’

아이가 놀란 눈으로 연서를 쳐다보았다. 연서가 읊조리듯 말했다.

‘처음에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지. 그 다음에는 담담해지더라. 그리고 그리워지더라구. 얼굴도 기억 안 나는데, 괜히 그분들 곁으로 달려가구 싶더라.’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나중엔 누군지 알아볼 기회가 있었어. 그런데 알아보구 싶지가 않더라. 왠지 행복하게 사실 것 같은데, 내가 끼어들면 망칠 것 같았어.’

아이는 기가 죽은 듯했다. 연서는 계속 말했다.

‘그런 거야. 내가 친엄말 찾아가는 거나, 네가 네 엄말 데려가는 거나, 똑같은 거야. 나도 어렸을 때라면 찾아갔겠지.’

조용히 묻고는, 생긋, 웃어 보였다.

‘넌 어떡할래?’

아이는 머뭇거렸다. 연서는 나직이 웃었다. 아이는 나지막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두,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 엄만 두구 갈래…….’

아이는 살짝 웃었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전해 줘.’

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꼭 전할게.’

아이는 은하를 보고 웃었다.

‘엄마, 기다려. 내가 엄마가 이쁜 남동생 낳게 해 줄게.’

연서의 눈앞이 뿌예졌다. 아이의 가는 길은 보지 못할 듯싶다는 생각을 했다. 은하가 물었다.

“아이가 뭐래요?”

“사랑한대요…….”

연서는 흐느끼며 말했다. 그녀도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사랑해요…….

그녀는 기억에도 없는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쁜 남동생 낳게 해 준대요…….”

은하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흑흑 하는 흐느끼는 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아가, 미안해……. 엄마가 많이 잘 못했어…….”

*
연서는 마스크를 벗고 수술실 문을 열었다. 긴 복도에, 딱딱한 의자가 벽에 붙여져 길게 놓여져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초조해하던 삼십대 초반의 남자는 연서를 보고 반색했다. 그의 눈이 연서에게 물었다.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아니면 사산입니까? 짧은 시간 속에, 그 의 얼굴에 희망과 절망, 고통이 스쳤다. 그런 남자의 표정이, 연서의 눈에는 왠지 유쾌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떠오를 기쁨의 빛이, 저절로 연상되어서였다. 연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태은하 씨 보호자 분, 축하드립니다. 씩씩한 왕자님이세요.”

 

“너는 나를 버렸는데
너는 나를 찾았도다.

나는 너를 죽였는데
너는 나를 살렸도다.

나는 부모 아니건만
너는 자식이로구나.

나는 임금 못 되건만
너는 백성이로구나.

나는 사람 아니건만
너는 사람이로구나.

나는 한때 살건만
너는 영원히 살겠구나.

나는 이승 왕이지만
너는 저승까지 왕이구나.”

-무속 설화 바리데기 설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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