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고함
한국인에게 고함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1.24 00:00
  • 호수 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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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기 복
칼럽위원

노론 일파는 궁궐 앞 하마비 앞에서도 말 위에서 내리지 않았다. 궁궐 숙위를 하던 병졸이 외쳤다.

“말 위에서 내리시오. 이 곳은 상감마마가 계신 궁문 앞이오”

“네, 이놈! 임금이 누구의 임금이란 말이냐? 네 임금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임금이 아니다”

노론 일파는 하마비에도 아랑곳없이 말을 탄 채로 지나쳤다. 조선 20대 경종 때의 일이다. 노론 세력은 경종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경종은 재위 5년도 채우지 못하고 독살설(?)과 함께 비운의 생을 마감하였다. 다음에는 영조가 21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번에는 소론 세력들이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종의 독살설 주범으로 지목된 영조는 재위 50년 내내 소론 세력들의 거센 반발과 함께 그의 정치적 생명을 건 탕평책에 발목을 붙잡혔다.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인 학자들을 대거 동원한 프로젝트로 <조선사> 36권을 펴냈다.

그들은 조선의 당쟁 역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한국인은 당쟁을 일삼는 민족임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했다. 그들에게 세뇌당한 일부 한국인들도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자기네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던 저 사대부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논리를 앞세워 반격할 수 있을까?

당파는 조선 중기에 사림들의 대거 정계 진출과 맞물려 있다. 관직은 한정되어 있는데 비해 관직 진출자가 많다보니, 학파 간에 붕당이 형성되었다.

같은 학파 중에서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재 분열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론과 소론, 남인과 북인이라는 사색당파였다.

이들이 초기에는 당파적 공론을 형성하여 정권 장악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오늘날의 정당 활동이 이와 다름이 없으니, 우리는 이미 500년 전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림들의 지나친 이념 중심의 대결 구도와 왕의 권력 강화 수단에 악용되면서 사색당파는 이전투구에 빠졌다. 끝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반세기 전에 외세에 의해 문을 열고 말았다.

오늘날, TV를 켜고 뉴스를 시청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마치 500년 전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보내는 것만 같았다. ‘너의 임금이지, 나의 임금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너희들의 대통령이지, 우리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라는 의식이 너무나 팽배하다.

‘너의 당이 무너져야, 우리 당이 살아남는다’는 대결 구도가 극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국민들도 너무나 쉽사리 흑과 백의 양 극점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우리 모두 너무 빨리 민주주의의 꽃대를 꺾으려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너희들의 대통령이지, 우리들의 대통령이 아니다’ 라는 의식이 남아있는 한,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차기에 다른 정당에서 정권을 장악하면 이 말이 사라지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더욱 분열과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결국 분열은 분열을 낳고, 갈등은 갈등을 낳을 것이다.

그럼, 우리들 모두 역사를 되풀이하여 후손들에게 나라를 망친 가장 어리석은 조상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될 것이다.

이제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심사숙고하여 모색해 볼 일이다.

정당은 상대 당을 죽이기로만 나아가지 말고, 더 나은 정책 발굴과 상대 당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국민은 지나치게 흑백 논리에 빠지지 말고, 중도를 중심으로 두터운 층을 형성해야 한다. 나의 생각이나 주장만 옳다는 견해를 과감히 탈피하고, 남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이 진정한 민주 시민이다.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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