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지식이 통하는 사회
암묵적 지식이 통하는 사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3.09 00:00
  • 호수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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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열 칼럼위원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은 한국 사회의 위기 국면은 암묵적 지식의 결여에서 생긴 것이라고 진단한다.

암묵적 지식이란 무엇인가. 가령 한 농부가 고추 농사를 지으려고 신품종 고추 묘를 구입했다고 하자.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재배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고추 농사꾼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지식. 예를 들면 묘를 심고 나서 뿌리 가까이에 비료를 듬뿍 주지 말라는 등 상식에 가까운 농사 지식까지는 재배 설명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농민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기 때문에 기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농부가 암묵적 지식을 모르고 고추 농사를 지으면 망칠 수도 있다.

암묵적 지식이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통념처럼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합의나 묵시적 동의 사항을 가리킨다. 국가 사회의 경영에 있어서도 암묵적 지식이 중요하다. 비록 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묵적 지식은 건강한 사회의 작동원리로써 존중되어야 한다. 암묵적 지식이 무시되면 그 사회는 망가질 수 있다.

시장 경제에서 노동의 유연성도 중요하지만 사회 통합적 측면에서 비정규직이 30%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부나 기업에서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식이다. 자유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경쟁에서 낙오된 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암묵적 지식이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정 총장은 또한 “교육의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서울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구 비율로 보아, 옛날처럼 서울대 학생 중 지방출신 학생이 50%는 넘어야 하며, 이것도 사회 통합을 위한 당연한 암묵적 지식이다.

우리는 압축적인 경제성장과정에서 효율성만을 중시하고 암묵적 지식으로 고려해야 할 빈곤층에 대한 배려, 환경, 윤리 등 많은 문제를 무시하거나 생략해 왔다. 이제 암묵적 지식을 공론화 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정 전 총장은 투자 부진, 양극화,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 세 가지는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과제라 하며 이것을 푸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은 관치 경제와 재벌 경제의 허상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한국의 대표적 경제지성이다(프린스턴 대학; 경제학 박사). 김대중 정부시절 한국은행 총재, 경제수석, 금융감독위원장 등 여러 고위직을 제안 받았으나 이를 고사했고, 통합 논술형 본고사 부활로 참여 정부와 갈등을 빚은 그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여야의 모든 정치권에서 대통령 후보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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