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빈손
엄마의 빈손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5.18 00:00
  • 호수 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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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내가 아홉 살쯤 되었을 때로 기억된다. 운동회 다음날 담임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운동회 날 부모님이 학교에 온 사람 손들어 봐요.”
예전에는 시골학교 운동회가 지역 축제였으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학교에 오셨으면 선생님을 만나고 가지, 왜 모두 그냥 가셨을까?”

선생님은 많이 서운하신 눈치셨다. 1년 동안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학부모들과 우리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쉬우셨던 것 같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맨손 들고 선생님 만날 수 없어서 그냥 갔데요.”
나는 손을 번쩍 들고 혼잣말이나 비슷했던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어떤 표정을 지으셨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에 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던 나는 엄마한테 그런 말을 뭐 하러 했느냐고 꾸중을 들었다.

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나는 퇴직을 하고 집에 있었다. 남편의 사업을 돕느라 바빴던 나는 아이들에게 소홀했다. 그래서 학교에 찾아가 아이에 대하여 여쭙고 싶었으나 빈손으로 찾아가 뵙기도 뭐하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들고 가고 싶어도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도 염려되었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은 쌓여갔지만 학교로 향하는 발길이 쉽지 않았다. 

선생님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녀수가 몇 안 되니 기대가 크고,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많이 궁금할 것이다. 

“선생님, 한 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A가 아파서 학교에 결석하던 날, A어머니가 마지막 인사에 앞서 한 말이다.

“걱정 말고 병원에 다녀오세요. 그리고 A는 학교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으니 오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상담하실 일이 있으면 전화해 주시면 되고, 저도 종종 전화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오는 일은 환영할 일이다. 학생에 대하여 내가 모르는 것, 부모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어린이 교육에 보탬이 된다.

그러나 형편에 의하여 부모가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려보면 부모의 학교 방문을 반가워 할 일만은 아니다. 또 우리 어머니, 그리고 철없는 엄마였던 나처럼 빈손으로 찾기가 주저된다면 안 오니만 못하다. 

학교는 아이들의 또 하나의 집이고 교사는 또 하나의 부모다.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교사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눈먼 사랑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것도 교사는 알 수 있으니, 오히려 교사가 부모에게 알려주어야 옳을 것 같다.

“어머니, 오늘 B가 일기를 아주 잘 써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도 한번 읽어보시고 칭찬해 주세요.”
“어머니, 오늘 S가 그림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그림에 특기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오늘도 부모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의 좋은 점을 찾아 부모에게 전화해준다.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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