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잣대
언론의 잣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5.25 00:00
  • 호수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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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복/칼럼위원

모내기가 한창이다. 들녘은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 ; 자유무역협정)의 아픔을 갈아엎고 어린 새 생명을 받아들였다.

속으로야 묵은 소나무 껍질처럼 조각조각 갈라지고 터지고 하였지만, 어린 생명을 끌어안은 품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우리 선조들은 삼십여 년 전만 하여도 논을 묵히거나 다른 작물을 가꾸는 행위는 천벌을 받을 짓으로 여겼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쌀을 비롯한 농작물이 이제는 시대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수출 한국’을 발목 잡는 걸림돌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다른 분야는 정부의 정책이 잘 먹혀들었다 하여도, 정부의 정책만 입김이라도 쏘일라치면 시들기 바쁜 분야가 농업이었다.

농부들에게는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웠다. 헐벗긴 나뭇가지처럼 세상이라는 빈 벌판에 내몰렸었다. 그들의 절규는 빈 벌판에서 서성이는 바람소리에 불과했다.

‘농자 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무대로 올라간 농악의 한 분야인 선반 놀이의 깃발에 불과했다. 대세는 농업을 버리고 있었다.

시골 지역에 기반을 둔 소수의 국회의원들과 언론들이 한·미 FTA 반대를 외치고 있었지만, 그 외침도 어쩐지 공허하기만 하였다.

우리나라가 ‘공업한국’으로 기치를 내건지 반세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반세기도 채 안 된 시간 속에 세계 최빈국을 탁탁 털어내고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 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가공무역’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하여 제품을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하는 무역 국가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사정상 WTO(World Trade Organization ; 세계 무역 기구) 경제체제에 따른 국가간 FTA는 불가불 가(不可不 可)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농업은 버리고 수백만의 농민은 다 고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현대 정치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지난 겨울을 되돌아보자. 낯설고 춥기만 한 도회지 한 복판에서 울부짖은 이들은 농민들과 소수의 동조자들 뿐이었다. 한·미 FTA가 체결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뒤돌아서서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지금 나서봤자 득이 없다는 속셈뿐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실컷 하고, 흘린 떡고물이나 주워 먹자는 심보뿐이었다. 대부분의 힘 있는 언론도 구경꾼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근래에 언론은 고도의 언론 플레이를 자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기업에서 발표도 하지 않은 해외로의 공장 이주 주장 등이다.

정부의 대기업 규제가 심하다느니, 임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느니, 극단적인 노조 때문에 회사 경영이 힘들다는 등의 논조를 내세워서 대기업의 등을 알아서 긁어주고 있다. 제4부의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언론이 소수 강력한 힘의 소유자 편에 있다. 대도시에서나 발생하는 촌지 문제를 놓고, ‘스승의 날’에 교사들이 휴업을 하면 촌지 문제는 전혀 해결도 안 되는데다 ‘놀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사회적 약자들은 이래도 저래도 비판거리일 뿐이다.

이제 언론의 잣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한·미 FTA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상생할 길은 무엇인가 하는 과제를 언론이 앞장서서 풀어내야 한다.

소수의 강자 편에서 등긁이가 되지 말고, 다수의 약자 편에서 배앓이를 슬어주는 약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가난한 제자들의 급식비나 등록금을 대납해주고, 함께 아파하는 수많은 교사들을 도매금으로 매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도를 향하다가 상처 입은 시민들을 달래주되, 불법 기초생활수급자를 위무하고 조장하는 언론(5월 8일에 공영방송에서 수차례 방영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왕이면 언론에게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예방적 비판’을 희망한다. 예를 들면, 장마철에 즈음하여 지난해의 수해복구 상황이 어찌 되었다고 하기에 앞서, 연초에 미리미리 수해복구를 위한 건설적인 정책제안은 어떠할까? 이런 관점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언론의 잣대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사회적 책임과는 동떨어져 있으면서 남의 책임만을 묻는 언론이 아니라, 사회에 함께 참여하고 함께 책임지는 언론의 진정한 모습을 기대한다.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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