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동정
어머니의 동정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6.15 00:00
  • 호수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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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칼럼위원

감으면 저며와서
베실을 가르는데
끈마다 이어진 가락
바디 속에 저물어가
가을비 지나간 뒤에
동정 다는 어머니


             -한산초, 모시 7


동정은 인두로 다려야 빳빳하고 곧게 펴진다. 인두는 숯불이 아니라 은근한 잿불에서 달구어야한다. 숯불은 화력이 세어 동정을 다리기엔 적당치 않다. 어머니는 인두를 당신 볼 가까이 대고 화력을 점검한 후 동정 깃을 정성스럽게 다리셨다. 동정이 더러우면 아내를 뭐라 한다면서, 아내의 책임이라 한다면서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동정을 다리셨다.

젊은 내 어머니의 동정 다리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저고리나 두루마기 깃 위에 흰색의 긴 헝겊을 좁게 댄 것이 동정이다. 지금의 와이셔츠 깃이나 저고리 깃 같은 것이다. 동정이 더러우면 아내가 아프거나, 게으르거나, 어딜 외출해 있거나 아니면 혼자 사는 홀아비의 경우이다. 이렇게 동정의 미추에 따라 가정이 화목한지 그날 가정 분위기는 어떤지 살필 수 있었다.

아내의 남편 공대는 그것으로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정이 더러우면 사람들은 그 아내를 뭐라 했다. 뭐라 해도 사람들은 그 말에 동조했으면 했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만큼 동정 다는 일은 아내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 중의 하나였다. 

지금 아이들에게 동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모른다 할 것이다. 남편의 외출을 위해 풀을 먹이고 동정을 달고 인두로 일일이 다렸다면 아이들은 왜 그래야 하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옛날 어른들의 동정 다는 모습은 이미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요즈음 말 솜씨, 음식 솜씨, 바느질 솜씨를 두루 갖춘 며느리들이 어디 있을까. 내 어머니는 말솜씨는 없었어도 음식 솜씨와 바느질 솜씨는 일품이었다. 요즈음 신부로서 바느질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인격을 갖춘 말솜씨와 가정 건강을 책임질 음식 솜씨는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철컥 철컥 바디 속에 저물어가는 베틀 소리를 들으며 가을비 지나간 뒤에 동정을 달으셨던 내 어머니. 새벽 모시 시장에 가시는 아버지를 위해 전날 밤 한 땀 한 땀 동정을 정성스럽게 달으셨던 내 어머니. 좋은 세모시 값 받기를 기도하며 동정을 신앙처럼 다리셨던 내 어머니.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참으로 옛날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 아들, 딸들은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당시에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알 지 못한다. 시멘트 바닥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흙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생활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조상들의 생활은 우리 민족의 뿌리이다. 조상들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당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모시로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다는 것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시를 짜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나라의 훌륭한 동량으로 키워냈던 것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당시의 모시는 요즈음 의류 브랜드 같은 혼이 깃든 최고급 원단이다. 지금도 명품이지만 당시에도 한산 세모시는 우리나라의 모시 중의 모시였다.

지루한 한낮의 뻐꾹새 울음소리, 한 밤중 귀촉도 울음소리, 저녁 움 밖의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지금도 철컥 철컥 어디선가 베틀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감꽃이 필 때도, 도라지 필 때도, 들국화 필 때도 그랬다. 봄비가 내릴 때도 장마비가 내릴 때도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도 그랬다. 그렇게 난 자라왔다.

그런 것들이 잊을 수 없는 옛날 이야기이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서럽고 고된 삶들이 아니었던가. 이런 아름다운 선물을, 이런 고귀한 선물을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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