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희
국희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8.10 00:00
  • 호수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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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웅순/중부대 교수

그 날은 몹시도 피곤했다. 국희(우리 집 개 이름)한테 일체 눈을 맞추지 못했다. 여느 때 같으면 국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겠지만 그 날만은 그렇지 못했다. 몇 번을 시도하더니 아예 현관 앞에다 또아리를 틀었다.

국희는 현관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강 건너 멀리서 울듯 애처롭게 울었다. 자정 넘어서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따금씩 울었다.

그 날 국희의 눈망울은 어느 때보다도 새카맣고 촉촉했다.
국희의 울음을 나는 안다. 아내가 출근하거나, 퇴근 시간이 지나거나, 외출하고 늦게 돌아오거나 그럴 때 현관문을 쳐다보며 멀리서 울곤 한다. 어린 아이가 치맛자락을 잡고 엄마에게 칭얼대듯 국희만이 우는 서러운 울음이다. 오늘은 아내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국희는 늦게까지 울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이 그리워 우는 울음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스라한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법이다.

포기 했는지 국희는 내게 와 아양을 떨었다. 몸을 이리 문대고 저리 문댔다. 문대는 게 싫었지만 그 날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눈빛으로, 스킨십으로 밖에 더는 말을 못하는 국희. 국희가 문대는 것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그날은 국희와 함께 침대에서 잤다.

아내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나는 이제 국희한테 찬밥 신세가 되었다. 며칠 국희에게 쏟은 정은 어디로 갔는지. 국희는 아내를 보며 뱅글뱅글 돌고 꼬리가 떨어지도록 흔들어댔다. 두 발을 치켜들고 캉캉 춤을 추고 컹컹컹 빠르게 짖어댔다. 아내의 얼굴에 수없이 몸을 문대고 입술을 부벼댔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나는 국희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국희도 모를 리 없었다. 정성을 다해 사랑할 때만이 상대의 가슴에 닿는다는 걸 난들 모르겠느냐만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 조금은 국희에게 서운했다.

국희에게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난 것이다. 호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온 방을 쓸면서 다녔다. 별 볼일 없다는 듯 나를 힐끔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아쉬우면 달라붙고 그렇잖으면 소 닭 보듯 하고 그게 다 세상인심이고 법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옛날 우리 집에는 점박이 바둑이가 있었다. 바둑이는 비 오는 날 툇마루 밑에서 죽었다. 쥐약을 먹고 눈에 파란 불을 켜고 죽었다. 그 마지막 눈빛은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하고는 인연이 멀다고 생각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말티즈와 함께 살고 있으니, 사람도 짐승도 참으로 알 수 없고 묘한 것이 인연이다.

지천명 넘어 내게도 말 못하는 사정이라는 게 있었나 보다. 아마 그 옛날 바둑이가 눈빛으로 내게 주고 간 새카만 연민이었을 것이다. 그 새카만 연민을 깨우듯 뒷산 적막 끝에서 개가 컹컹 어둠을 짧게 찢고 있었다. 국희는 지금 내 발 밑에서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망울이 유난히도 새카맣고 투명한 우리집 국희. 그 눈망울에 하늘과 별들이 풍덩 빠질 것만 같은, 빠져서는 허우적거릴 것만 같은 우리집 국희. 어느덧 국희도나와 함께 한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분명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옛날 그 바둑이 눈빛이 내 곁을 떠나는 날 그 때나 나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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