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여 단결하라
노인들이여 단결하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8.31 00:00
  • 호수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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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열/칼럼위원

 

내가 거처하는 곳은 청양의 구봉산, 보령 성주산, 부여 외산 만수산의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인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집 걸러 빈집이고, 겨우 20여 농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75세 쯤 된다.

젊은 층에 속하는 이장님도 70이 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개 독거노인이거나 노부부들이다. 아직도 7,80대 노인들이 허둥지둥 농사일에 시달린다. 결코 심심해서 소일하는 것도 아니고, 괜한 노욕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절박한 생계비 때문이다. 고혈압, 관절염 치료비, 각종 공과금, 영농비……. 객지에서 변변찮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려면 농사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몸은 어느 한 구석 성한 곳이 없다. 평생 고된 농사일로 허리는 낫처럼 굽었고, 다리는 멍에처럼 휘었다.

의사가 진단하면 모두 병원에 입원 치료해야 할 육신인데,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500평 밭의 고추를 따야 하고, 논에 나가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해질 무렵 노부부가 경운기를 몰고 녹초가 된 몸으로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 비록 남의 부모라 할지라도 가슴이 쓸어내리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보며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신성함을 말할 수 있겠는가.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편안하게 즐길 나이에, 그들을 불볕더위 들판으로 내모는 이 사회를 누가 감히 ‘복지국가의 문턱’ 에라도 다가섰다고 할 수 있으랴. 이건 ‘후레자식들의 나라’ 가 아니고 무엇이랴.

마을 이장 댁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면 긴장된다. 대부분 좋은 소식이 아니다. 간밤에 누구의 모친이 돌아가셨다든가, 누구의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등, 비보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 마을 안내 방송은 귀에 익숙한 이장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날은 마을의 젊은(?) 이장님(71)이 죽은 날이었다.

고추밭을 둘러보다가, 농로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더위와 과로 때문이다. 산골에서 살다 보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예쁜 전원주택을 짓고 편안히 살고 싶은 생각이 죄의식으로 다가온다.

한국 농촌 노인들의 노동량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러한 노인들의 극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노인들의 자살률이다. 최근에 와서 고령자의 자살률은 급증했고, 세계 1위에 이르렀다. 부끄러워 국제 사회에 드러내기조차 참 곤란한 통계 수치다. 이 땅의 60세 이상 노인들의 25%가 총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절대 빈곤 상태에 있다.

내년부터 기초 노령 연금제가 시행되어 가난한 노인들에게 월 8~9만원을 지급한다고 하나, 국민 소득 2만불 시대의 노인 복지 정책은 아니다.

이 땅의 노인들이여, 깨어나라. 단결하라.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다. 그 존엄성을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헌법상 노인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노인 복지 정책을 꼼꼼히 챙겨 보고 투표해야 한다.

복지 국가의 여부는 노인들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국민소득이 4만불이 되어도 고령의 노인들이 논바닥에서 엎드려 일하고 있으면 그런 사회는 복지국가라고 볼 수 없다.

늙어서 한 때 편안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인간의 소박한 꿈이다. 이제 우리 농촌의 노인들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노동자들처럼 단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 복지 예산은 항상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선거때 노인들도 정치적인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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