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문<窓戶> 바르고
한지로 문<窓戶> 바르고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9.14 00:00
  • 호수 3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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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영
칼럼위원

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잦고, 처서가 지난 뒤에도 더위가 가실 줄 몰랐다. 그러나 9월 들어서며 십여 일 가까이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창밖에 서성이고, 사람들은 문을 닫고 긴 소매 옷을 찾는다.

아직은 바깥쪽의 투명 유리 창문만 닫아도 냉기를 막아낼 수 있지만 곧 더 추워질 것이고, 그 때는 안쪽의 반투명 유리문까지 꼭꼭 닫아야 할 것이다.

요즈음의 문은 틈 하나 없이 아귀가 잘 맞아 외풍 걱정 안 해도 되고, 밖에서 들리는 갖가지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를 막아준다. 사람들은 바깥쪽의 반투명 유리문까지 꼭꼭 닫아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을이 되면 창호지로 문<窓戶>을 바르는 집이 많았다. 해가 좋고 바람이 적은 날을 택해서 여름동안 모기장을 발랐던 지게문이나 창문을 돌쩌귀에서 빼어낸다.

그리고 떼어낸 문짝에 물을 흠뻑 뿌려 불린 뒤에 종이를 뜯어낸다. 새 창호지에 구석구석 풀칠을 해서 물기가 마른 문살에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풀이 묻은 붓으로 종이 위를 쓱쓱 덧칠해주는데, 그렇게 하면 종이가 마른 뒤에도 북소리가 날만큼 팽팽해지고 구멍이 덜 나며, 외풍도 막을 수도 있다. 손잡이 부분이 잘 찢어지기 때문에 종이를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덧바르기도 하는데, 그 종이 밑에 코스모스나, 국화 같은 가을 꽃잎을 넣어서 바르곤 한다. 사람들은 긴긴 겨울동안 문살 사이사이로 얼비치는 꽃잎들을 보며 지난 여름의 꽃 꿈을 다시 꾸게 된다.

한지로 바른 한옥의 문<窓戶>은 좋은 점이 많다. 밖의 공기와 안의 공기가 소통이 되어 방안의 공기가 항상 신선하다는 점 말고도 안에서는 바깥의 소리를, 밖에서는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채마밭에 비긋는 소리도 들리고, 달빛이 고운 밤에는 섬돌 밑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와 벗할 수 있어서 좋다.

마당에서 일하는 새댁은 방안에 잠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마음 조리지 않아도 되니 좋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는 시어른의 큰 기침 소리를 금방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노랗게 기름먹인 종이 장판 위에 창호지로 걸러내어 한결 부드러운 가을 햇빛이  쌓이고, 창호지를 통해서 어둠 속으로 번져나가는 불빛은 모두를 감싸 안을 만큼 여유롭고 너그러운 고향의 불빛이 된다.  

그런가 하면 안 보여서 좋은 것도 있다. 밖에서는 안의 모습이 안보여서 좋고, 안에서는 바깥의 모습이 안 보이니 좋다. 안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있을 때, 어려운 손님이 들이닥치게 되면 서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지를 바른 창호는 안의 모습이 안 보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다고 닫고 또 닫은 이중 유리창은 속이 보이지 않는 데는 나무랄 데 없지만 소리까지 차단해버려 동태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새로 지은 집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효율성 때문에 이중으로 창호를 해 단다. 그러나 마음의 문<窓戶>에는 한지를 발라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까지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누가 들을까봐 함부로 말을 내 뱉지 않게 될 것이다. 또 피차간에 민망한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 가을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속에서 이중 유리 문<窓戶>을 떼어내고 꽃잎을 넣고 창호지로 바른 문을 달아야겠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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