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그리는 세상
손끝으로 그리는 세상
  • 최현옥
  • 승인 2002.08.29 00:00
  • 호수 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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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짓은
단순한 수화가 아닌
영혼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무지개 빛


일요일 오후 2시, 서천농아인교회 예배시간 고운이(정의여고3·여·19)는 손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고운이의 예쁜 손짓은 농아인들의 예배시간에 빛을 발하며 교인들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수화를 하면서 손이 정직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하는 손짓이 사람들에게 빛으로 선사되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6년 전 호기심으로 수화를 배운 후 농아인들을 위해 교회뿐만 아닌 경찰서, 장애인협회 등에서 봉사활동중인 고운이는 이런 계기로 장애인과의 만남이 더욱 가까워져 기쁘단다.
농아인들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고운이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또한 수화를 배우며 성격이 차분해 지고 표현력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이 갖는 사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력이 생겼다며 수화 예찬에 침이 마른다.
지금도 군산 수화교실에 나가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고운이는 처음 수화를 배울 때 단어 외우기와 정확한 손동작·모양, 연결동작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 간판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머릿속으로 수화를 대입하며 손동작을 하나씩 익혀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아인들이 사용이 편한 농식수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화보기가 두려웠으며 표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초급과정과 중급과정을 거치며 3년이라는 시간동안 끝없이 갈고 닦은 고운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첫 현장 실습 장은 경찰서로 농아인이 절도를 해서 통역을 하러 갔다가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서를 꾸미는데 도왔다. 이 같은 도움은 3번 있었고 그것은 홍성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는데 법관들은 그녀가 미성년자라 걱정이 많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비록 농아인의 좋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 어느 쪽이든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녀에게 행복한 일이다.
또한 작년 고운이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협회의 청탁을 받고 찬송가를 수화로 선보였다. 같은 학년 친구들과 후배 20여명이 모여 보여준 공연은 서로에게 보람으로 작용하며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현재 대부분의 젊은 농아인들은 교육을 통해 수화를 사용하지만 노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고운이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못하고 살아온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배 후 수화의 기초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고운이는 지역에서 수화 봉사활동을 하며 전문 통역사가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게다가 자신이 학생신분으로 비정식 통역사로 활동하며 어려움이 많단다.
“수화는 농아인들만의 언어가 아니고 언어 표현의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는 고운이는 “지역에서 수화를 배우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동안 나이제한과 학업 때문에 수화자격증 취득을 미뤄왔던 고운이는 내년에 자격증을 취득하여 통역사로 활동할 것을 다짐하며 손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다.
“봉사는 대가없이 도와주는 것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하는 것”이라는 고운이는 수화로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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