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할아버지들의 빛바랜 수다
할 말 많은 할아버지들의 빛바랜 수다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0.04.26 18:29
  • 호수 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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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면노인회 ‘금란회’

 

비인면노인회 박성우 회장(맨왼쪽)과 노인회원 5명이 사무실에 모였다.

 

 

▲ 비인면노인회 금란회원들이 아침부터 사무실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비인면노인회(회장 박성우) ‘금란회’.

금란회는 15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비인면노인회 내부 친목단체로 남성들로만 구성돼 활동하고 있는 면내 최고령 집단이다.

지난 22일.

아직 채 가시지 않은 4월의 찬바람 속 따뜻한 난로가 켜져 있는 노인회 사무실에는 여섯 분의 백발이 모여 낡은 가구들과 하나 된 비인 속 또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비인이 성할 당시 옛 양조장 사무실로 사용해왔다는 이곳 노인회관은 언젠가 ‘금란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양주, 소주가 주류시장을 평정하면서부터 예전 모내기철 품앗이 모습과 함께 자취를 감춘 막걸리.

비인면 특유의 막걸리 향으로 하루면 몇 번이고 돈다발이 쌓였던 낡은 금고와, ‘79년’이라는 흰 글자가 새겨진 빛바랜 거울의 애절함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저 액자는 뭔가요?”

 

“아~저거 ‘비인성내리 검성은 옛비인읍명 금란회 면내노인의 조직 회원15명’이라고 적힌 거여”

 

할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양조장이 위치한 사무실터는 비인면의 중심가라 불리는 성내리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옛 비인의 이름은 ‘검성’이었다고 한다.

예전 금란회가 조직되고 현재까지 15명의 회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검은색 테이프로 윷의 앞뒷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윷놀이 판이 난로 옆에서 노인들의 시름을 달래고 오래된 나무문 근처에 달린 동그란 스위치는 이 한옥 건물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천은 천안에 이어 충남도내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는 말로 본인의 존재를 드러낸 박성우(88·비인면 다사리) 회장은 왜 굳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할아버지, 할머니 방이 각각 따로 있느냐는 기자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남자·여자 화장실도 함께 쓴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남자 여자를 따로 두려는지 모르겠어. 남녀칠세부동석이라서 그런가보우”

여든을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직 교장출신답게 또렷한 어조로 말을 마친 박 회장은 사회가 외쳐대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 노인들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까부터 유심히 윷판을 쳐다보고 있는 취재진에게 “이거(윷판) 만든 사람은 저기 하늘나라로 떠났어”라며 기자의 환심을 사더니 이내 “노인은 노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사회가 너무 각박한 것 같어. 비인만해도 노인들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노인들에 대한 대우는 바닥을 치고 있으니 말이여”

“그 노령연금만 해도 그래. 한 달 7만원으로 어디 생활이나 할 수 있겠어?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골방 애물단지 취급까지 받으려니 허탈하구만 그려 허허”

“선진국 어느 나라는 우리나라 돈으로 60만원이 넘는 돈을 받는다는데 우리는 그것도 안주면서 노인의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조정한다지?”

현재 65세라는 유엔(UN)에서 유래된 노인기준 연령이 인간의 수명연장과 함께 70세로 그 기준이 바뀔 공산이 크다는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고 나선 박 회장.

한국은 이미 전체인구의 11%인 550만명이 노인인구로 앞으로 2050년에는 38.5%(1000만명)가 노인인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 사무실 출입구 한쪽에 위치한 오래된 스위치.

 

“한옥건물이 참 정겹네요”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창틀과 천장 위에 새롭게 덧발라져있는 페인트칠.

신나는 윷놀이가 끝나면 맛있는 요리로 허기를 달랜다는 가스렌즈 위 통 큰 양재기.

“이것들도 다 우리와 같이 늙어가고 있지”

 

▲ 만든 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금란회표 윷판.

 

늙음은 결코 ‘나이 들었다’는 뜻이 아닌 친구와의 우정과 같이 ‘깊고 진해지는 것’이라며 오늘도 비인의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금란회원들은 이곳을 함께 지키는 회원들이 있고 윷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우리 수다 들어줘서 고맙네. 기자양반 언제라도 한가할 땐 들러 놀다가”

 <이미선 기자>
jjangst18@newss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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