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죽어간다…구제역 이은 또 다른 재앙
꿀벌이 죽어간다…구제역 이은 또 다른 재앙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1.01.15 00:49
  • 호수 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이러스 번져 개체수 급감, 토봉 사실상 궤멸
기상이변이 원인…“분봉 자제해 강한 벌 만들어야”

▲ 낭충봉아병에 걸린 벌집(한국토봉협회 자료). 벌방의 뚜껑이 흐물흐물하고 벽면이 잘려있다.
벌 전염병과 기상 이변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토종벌의 76.7%인 31만7000군이 낭충봉아부패병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양봉협회 충남지부장 노영근(화양면 추동리)씨는 “토종벌은 70-80%가 줄었고 토종벌 농가의 90% 이상이 피해를 입어 토봉은 사실상 궤멸했다”고 말했다.

낭충봉아부패병(囊蟲蜂兒腐敗病)이란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이 병에 걸린 유충은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감염된 유충들은 초기에 회색빛(머리 부분은 거무스름한 빛)을 띠었다가 점차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후기엔 거의 검게 변하며 부패한다. 또 초기에 몸 속에 물집처럼 액(液)이 가득 차면서 전체적으로 약간 부풀어오르다가 점차 쪼그라들며 외피가 단단하게 굳어져 결국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오염된 화분(花粉; 꽃가루)과 화밀(花蜜; 꽃꿀) 등을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일벌들은 병든 유충들이 들어 있는 벌방을 청소하고 말라 죽은 유충들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벌들도 감염되며, 양봉기구와 벌의 교환 등을 통해 벌통에서 벌통으로 전염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영근 지부장은 낭충봉아부패병이 확산되기 이전부터 벌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벌들은 꽃꿀을 날라와 새끼를 먹이는데 잦은 비로 이러한 먹이활동이 어렵게 돼 자연스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양봉에서는 인공화분(설탕)을 이용해 어느 정도 해결하지만 토봉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피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치료약이 절대 부족해 양봉농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았다. 노 지부장은 서천군에서는 “재작년 가을부터 치료약을 꾸준히 공급해 작년 봄부터는 호전되기 시작하여 타 지역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전했다.

꿀벌은 본격적인 꿀 채집을 앞두고 2월부터 4월까지 꾸준히 알을 낳아 개체수를 2배 이상 불린다. 이 때 기온이 떨어지면 생식 활동이 더뎌지거나 애벌레가 동사하는 ‘냉해’가 발생한다.
기후 변화로 달라지는 식물 분포도 벌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카시아 나무는 서양종 벌의 주요 꿀 채집원이지만 온난화에 취약해 잎이 노랗게 변해 말라 죽는 황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90년 17만5000㏊였던 아카시아 재배 면적은 2007년 절반 이하인 6만㏊로 줄어들었다. 상록 활엽수 등 아열대성 식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꿀이 나지 않아 꿀벌에는 효과가 없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벌꿀 생산량은 2003년 3만300t에서 2009년 2만1000t으로 줄어들었다.

벌꿀과 꿀벌의 감소는 식물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게 된다. 벌이 꽃의 수술과 암술을 교배시켜 열매를 맺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딸기·참외 등 하우스 재배 농가 대부분이 수분받이용으로 벌통을 대량 구입한다”며 “벌이 사라지면 과일이 사라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5만종의 식물 가운데 3분의 1이 꿀벌 등으로 생식하는 충매화다.

노영근 지부장은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지난해 냉해와 폭염 등 극심한 기상 변동으로 대량 발생 조건이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강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숫자 늘리기, 즉 분봉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밀(流蜜; 꽃에서 꿀이 분비되는 현상)이 왕성해지고, 벌의 한 무리를 형성하는 봉군(蜂群)의 세력이 강하여 양질의 화분과 화밀 등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 또 산란력이 좋은 여왕벌을 유입하면 대개 병세가 누그러진다고 한다.

구제역의 공포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꿀벌의 감소는 또 다른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