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인이여, 하나가 되자”
“서천인이여, 하나가 되자”
  • 최현옥
  • 승인 2002.11.28 00:00
  • 호수 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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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찾아주신 회원 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앞으로 화합을 통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줍시다”
단신의 작은 체구, 제9회 재경서천군민회에서 ‘재경 자랑스런 서천인상’을 받고 인사말을 하는 이승구씨(65·경기도 용인시)를 보며 어쩜 저런 체구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에너지가 날까 싶다.
그러나 일찍 외지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이 세상은 다부진 몸을 가지게 했을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홀홀 단신으로 살아가며 끝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오늘의 재경서천군민회 원 4백50여명이라는 쾌거를 이룩해 낸 것이다.
“한국 사람들 학연·지연 많이 따진다고 뭐라 하지만 외지에 나와 우연히 만나지는 지역 민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알아요?”
1993년 재경 서천군민회를 재창립하여 8년 동안 회장직을 맡아온 이씨는 타향살이의 서러움부터 털어놓는다.
서천중학교를 졸업 후 학업을 위해 외지를 떠돌아야 했던 그는 외지사람들이 화합이 잘 되는 모습이 부러웠고 항상 출향인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짙었다.
이에 대학시절 재경 서천군 학우회 회장을 맡으며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고 방학 때면 고향에 내려와 농사일을 도우며 재경학우들과의 친목을 도모했다.
또 서천중학교 졸업생 6기부터 26기 회장들의 모임인 서원회를 조직하는 등 여러 단체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씨는 군대 제대 후 1년 동안 서천군청에 임시직으로 근무하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에게 있어 지역에서 잠시나마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품속에 다시 안긴 기분이었단다.
그 후 서울 범화무역에 입사를 하게되었고 대우그룹계열 피어리스 화장품과 의류업체인 크레송 사장을 엮임하며 서울에서 기반을 다졌다.
자신이 어렵게 서울에 기반을 다진 만큼 서울에 올라와 타지에서 뛰는 후배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이씨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터를 물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에서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재경서천군민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인 장학사업을 펼쳤다.
“후배들의 모습을 볼 때 자신의 자식을 보는 것 같아 가슴한구석이 뿌듯해진다”는 이씨는 항상 몸은 떠나있지만 고향에 대한 애착심은 그 누구보다 깊음을 자부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지역 사람들과 고향이야기를 나누겠냐며 길어지는 인터뷰를 짧게 끝내길 요청하는 이씨를 보며 지역사랑의 실천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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