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사랑을 전해드려요”
“빨간 사랑을 전해드려요”
  • 최현옥
  • 승인 2002.12.05 00:00
  • 호수 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홍규씨는
디지털 시대에
아나로그 방식으로
사랑을 전한다.


디지털의 어원인 디지트(digit)는 사람의 손가락이나 동물의 발가락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정보화 사회의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우리는 인터넷이란 새로운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사람들은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디지털의 어원 디지트처럼 우편물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홍규(군사리·57)씨, 그의 아날로그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큰 변화는 갈수록 사람의 정이 메말라 간다”는 것이죠.
IT산업의 발달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이씨가 가장 체감하는 것은 사람간의 정이 결핍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역시 커다란 우편 가방을 메고 자전거로 비포장 길을 달려 편지하나에 정을 나누던 아날로그 세상을 그리워하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씨가 우편배달업무를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친구의 권유. 행복은 전염된다는 말처럼 그리운 이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행복했고 그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보내온 편지를 대신 붙여주고 읽어달라며 부탁하는 노부모들, 원거리 우편업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냐며 건네는 냉수 한 그릇 등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며 이씨는 주민들과 한 가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악천후에도 무거운 가방을 비닐로 쌓아 흙탕길을 걸어도 자신이 마치 사랑의 전도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행복했다.
이씨는 최근 오토바이와 적재함이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하루평균 1천여 통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지만 발걸음이 옛날 같지만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전자우편 이용의 급증으로 서신편지는 군인이나 여학생의 것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슬그머니 각종 기업체의 상품선전 홍보물, 청구서 등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 이젠 주민들에게 우편물은 짜증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가끔 어렵게 배달한 우편물을 이씨가 보는 앞에서 겉봉투만을 확인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씁쓸함을 느낀다.
또 동시다발로 전달되는 우편물이 많아 주소지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처럼 이웃에게 우편물을 위탁하기 어려운 실정을 보며 사회의 단면을 읽는다.
하지만 꼼꼼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이씨의 일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도 능가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일이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빨간색으로 따뜻한 정보수단이 되길 바란다.
연말이 다가오며 그리운 이에게 편지 한 소절 쓰기를 권유하는 이씨는 기다림의 즐거움을 상실한 시대에 사람들의 손가락 혹은 동물의 발가락이 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