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는 아쉬움의 이름... 우리는 항상 고향을 꿈꾼다
까닭 없는 아쉬움의 이름... 우리는 항상 고향을 꿈꾼다
  • 김정기
  • 승인 2002.12.05 00:00
  • 호수 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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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지던
고향의 하늘을
나는 왜 잊고
살았을까?”


소년 시절, 두 번 세 번을 거쳐가도 매번 언제나 간절히 그가 기다리는 날이 있었다.
봄·가을 두 번의 소풍가는 날,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 그리고 한 겨울의 눈 내리는 날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눈 내리는 날이었다.
밤새 내린 함박눈이, 밭두렁과 논두렁 그리고 구릉지까지 덮어 지상으로 내려앉은 뭉게구름처럼 쌓여있는 날 아침은, 학교가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까지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눈이 오면 학교를 가지 않아 기뻐했던 이 소년은 비남초교를 거쳐 서천중학교(11회)를 입학할때도 수석을 했고 졸업했을때도 1등밖에 몰랐던 아주 똑똑한 학생이었다.
비인면 다사리 상다마을 출신의 그 소년은 이제 50년이란 세월을 훌쩍 지나쳐 환갑을 지난 나이로 성장했고 이제 그의 직함은 현대증권 고문과 재경서천중총동창회 박성군회장(61)으로 표현된다.
그에게있어 고향의 존재는 아름다우면서도 까닭 없는 아쉬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정체는 아마도 뒤돌아 볼 여유 없이 현대증권맨으로 무작정 앞만보고 달려왔던 현실의 척박함에서 비롯되었다.
서천중학교(11회)와 서천고등학교(7회)를 거쳐 경희대법대를 졸업한 박회장은 졸업후 합동법률사무소에 근무하다 80년에 법률고문으로 현대증권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증권계가 어려워 법률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는데 박회장은 당시 전국을 돌며 법률사고를 도맡아 처리했고 겸손함을 잊지 않은 그의 생활신조는 입사 15년만인 95년 이사로 승진할 수 있었다 . 이후 안양·서초지점장과 본사 영업부장, 강남지역 본부장을 거쳐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중에 있다.
경력이 화려한 지라 “증권에 대해서는 박사 시겠는데요”라고 묻는 기자의 물음에 그 같은 질문은 ‘관리대상 품목’이라고향 얘기만 나누고 싶다며 다시 과거를 헤짚어 간다.
무엇인가 중요한 물건을 집에 두고 나온 날 아침, 기억을 해내곤 다시 돌아가서 가져와야 할까 말까를 한참이나 망설이다가도 끝내는 출근 시간에 쫓겨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할 때의 그런 아쉬움, 박회장이 서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바로 그런 아쉬움이다.
돌멩이 모습까지 줄줄이 꿰어찼던 고향의 들녘, 풍물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지던고향의 하늘을 나는 왜 잊고 살았을까. 그곳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곳은 얼마나 변화였을까 등 아쉬움의 정체는 다양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지난 7월 재경서천중학교 총동회라는 모임을 맡았다.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워하지 않고 이제는 만나기로 작정한 것이다.
“서울에 있는 서천중학교 출신인물이 어림잡아 7천여명은 되는데 사는게 바쁘다고 동향인끼리 잘 알지도 못하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게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고향사랑을 실천하며 봉사하며 다 모이게 할 계획입니다”
그의 이제 목표는 동향이란 공통분모를가진 재경 서천중 모임의 멈추지 않는 상한가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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