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
전라도 사람
  • 문영 칼럼위원
  • 승인 2011.09.05 11:06
  • 호수 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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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내 고향은 전북 군산인데, 결혼하여 이곳 충남 서천에서 살기 시작한지도 벌써 사십년 가까이 된다. 전에는 서천에서 군산에 가려면 장항까지 가서 배를 바꿔 타야했기 때문에 왕래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강하나 사이인데도 생활 방식이나 말이 군산과 다른 것이 많았다. 나는 처음 듣는 사투리에 어리둥절했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 맛에 난감해지기도 했다.


음식 맛과 사투리에 혀와 귀가 익숙해져갈 무렵 금강하구에 둑이 생겨서 배를 타지 않아도 군산과 서천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이 발달되면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도난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데 논둑에 메어놓은 이웃집 염소가 없어졌다는 날도, 이웃 마을의 양곡 창고가 몽땅 털렸다는 날도, 길가에 널어놓은 벼를 누가 싹 쓸어갔다는 날도 동네사람들은 같은 말을 했다.


 ‘전라도 사람이 훔쳐갔다.’
하도 자주 들어서 면역력이 생길 만도 한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성을 높여 따져 물었다.
 “전라도 사람들이 도둑질해 가는 거 보셨어요?”
사람들은 뒤늦게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던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를 뜨곤 했다. 하굿둑이 생기고부터 도난 사고가 부쩍 심해져서 그리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둑 중에 전라도 사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온통 전라도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살기 좋아져서인지 도둑맞는 일도 차츰 줄어들었고, 각지에서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면서 ‘전라도 사람이…….’하던 말도 사라져갔다. 그런데‘전라도 사람…….’이란 말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이 건너와 서천의 상권을 독점하고 있는데다 그들의 상술을 따라갈 재간이 없으니 큰일이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천주민들도 군산에 가서 돈을 다 쓰고 오니 더욱 큰일이란다. 


서천의 경제 문화생활권이 전보다 더 많이 군산에 속해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양한 상품 가운데서 물건을 고르고 싶어 하는 구매자는 군산으로 간다. 옷도 사고, 가전제품도 사며, 간단한 생활용품마저 군산에 있는 대형매장에 가서 사온다. 야구 경기장에도 가고, 영화관에도 간다. 군산에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2014년에 실시하는 지방선거 전까지 인접해 있는 시군을 합하여 통합시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서천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여, 보령과 합칠 거라는 이야기도 있고, 군산과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돌 때도 있다.
서천군이 인접도시와 통합되어 큰 도시가 된다면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을 받으면 돈 때문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남아도는 공무원과 사무실의 수를 줄여 세금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군산과 통합된다면 군산 화력발전소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서천의 김 약식업자들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이며, 서해 연안 조업권 때문에 늘 옥신각신 하던 것도 쉽게 해결 될 것이다.


정확한 여론조사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서천주민들은 보령, 부여보다 군산과 합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장항지역에서는 장항 군산 통합촉진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통합시가 된다면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등 지방자치단체는 사라지고 큰 도시가 새로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꼭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젠 나도 충청도 사람이 다 되어버렸는데, 앞으로는 전라도 사람도 아니고 충청도 사람도 아닌 통합시민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된다면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특색과 문화, 역사를 비롯한 풍습까지도 서로 융합되거나 흡수되어 고유성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또 지역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자고 실시했던 지방자치제도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익을 위해 뭉쳤으니 만족할 만한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해법을 찾기 위한 이합집산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전라도 사람 때문에 못살겠다던 이웃집 아저씨의 투박한 목소리가 그립고, 핏대를 올려 전라도 사람을 옹호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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