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나라, 한국
문어의 나라, 한국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1.09.30 14:33
  • 호수 5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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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세계를 잠식’ 한다든가, ‘애플, 삼성과의 PC전쟁’, ‘폭스바겐 회장, 현대 자동차를 보며 직원에게 역정’ 낸다는 등의 기사들을 종종 대한다. 이제 한국 경제는 일본 등의 선진국 따라가기가 아니라, 세계 경제 시장에서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때때로는 세계 경제 첩보 전쟁에 우리나라도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든다.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앞서 사뭇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삼성은 알아도 코리아는 모른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세계 시장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십 수 년째 삼성과 LG는 각 도시마다 축제 등을 지원하며,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인도에서 LG에서 만들어진 가전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3년 여 전에 서유럽 몇 개국을 여행할 때에도 각 도시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홍보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8만 ㎞가 떨어진 지구 반대편의 도시에서 눈에 익은 장면과 마주치는 것이 여간 반갑고, 가슴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OECD 국가들 중에 올해에도 4~5%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고 한다. 초고속의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데, 이제 한국의 경제 성장을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끝을 짐작할 수 있는 ‘신화’로 불리고 있다. 그저 별 볼일 없을 것 같아서 하청업체처럼 여기던 몇몇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서는 모습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의 유수한 경제 전문가들도 이처럼 신비로운 현상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고 한다. 반세기 전만 하여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 경제 원조로 근근이 아사를 면하기도 했던 기아의 나라! ‘기브 미 초콜렛!’ 하며, 서양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우리들이 ‘천원만! 천원만!’ 하며 외국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골이 너무나 깊어서 그 속을 헤아릴 수 없다는 ‘정경유착’. 그만큼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뒷받침을 한 본국 시민들만 영원한 봉으로 여기는 안하무인의 태도. 도박적으로 몸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 대기업들간의 몸통 경쟁. 약육강식 논리로 중소기업을 스스럼없이 무너뜨리고 그 위에서 군림하려는 대기업과 이에 박수로 응답하는 한국 정부. 제법 강도가 센 경제 충격에 대응이 불안하기만 한 산업 구조 등등.


특히, 국내 경제 사정은 더욱 위험천만이다. 몇몇 대기업이 전국의 산업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읍소재지 같은 곳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 등이 즐비하고, 중소기업이 명맥을 이어갈만한 사업까지 대기업이 막대한 자본으로 잠식해가고 있다. 심지어 중소상인들도 대기업의 체인망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이익금이 발생하는 것 못지않게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자금이 본점에 빨려 들어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극소수의 대기업만 존재하고, 시민들은 경제 노예로 전락할 상황에 빠져 있다.


한 때는 ‘사회가 발전하면, 인간은 일을 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다.’는 즐거운 공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각 개인의 일거리는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 큰 소리를 쳐가며 살 수 있는 권리이자 힘이다. 인간으로서 일을 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밥은 ‘눈칫밥’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외치고 싶다. 중소기업도 할 수 있는 일은 대기업이 나서지 않기를! 중소상인들이 하는 일은 대기업이 유통을 자제해 달라고! 정부는 한국경제의 외적 성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민 모두가 즐겁고 조화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조정자가 되어 달라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회적 계급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조금은 무질서로 보일지 몰라도 다양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이를 아름답게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온 바다를 끌어 모아 내 것을 만들려는 욕심 많은 문어가 아니라, 곳곳에 사랑을 심어주기에 발이 모자란 착한 문어가 되기를 빈다. 착한 문어가 많이많이 사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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