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나무의자
  • 문영 칼럼위원
  • 승인 2011.11.07 11:01
  • 호수 5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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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의자입니다. 앉으면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의자입니다. 열 뼘 남짓 되는 길이에, 두께가 손바닥 두 개를 포갠 만큼 되는 널빤지 두 장을 붙여 네 모서리에 거친 각목으로 다리를 만든 의자입니다. 포장마차나 목로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허름한 나무의자입니다.
지금 내 몰골을 보면 곧이듣지 않을 테지만 나도 한 때는 큰 나무였습니다. 지금 내 옆에 버티고 서 있는 아름드리 정자나무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제법 근사한 나무였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흠이었으나 봄이면 꽃을 피우며 꿈을 키웠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을 되작거리며 햇빛 사냥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누렇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며 우수에 잠기곤 했지요. 겨울에는 알몸으로 서서 멀리까지 내다보며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누구를 기다렸냐고요? 가슴에 간직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느라 겨울 내내 까치발로 서서 동동거렸지요.
처음에 의자로 만들어질 때 기왕이면 등받이도 있고, 팔걸이도 있는 근사한 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흔들의자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나는 방안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그냥 허름한 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여기 정자나무 밑에 나를 가져다 놓은 것이지요.
나는 가끔 심술을 부렸습니다. 의자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 사람이 있으면 두 다리를 슬쩍 들어 올려 골탕을 먹였지요. 정중하게 앉는 사람까지 엉덩방아를 찧게 할 수는 없어서 조심하라고 경고만 주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두셋이 어깨를 맞대고 앉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삼베 등거리 걸친 남정네들이 내 등판 한가운데에 장기판을 놓고 양 끝에 앉아 장기를 두면, 해가 뉘엿뉘엿 할 때까지 붙잡아두었습니다. 막걸리와 시큼한 김치로 땟거리를 차릴 때는 얼른 주안상이 되어 주었고, 아이들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때는 흔쾌히 사다리가 되어주었지요. 언제부턴가 이웃들의 웃는 얼굴이 바로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꿈이 바로 나의 꿈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두어 해 전 정자나무 둘레에 예닐곱 개의 튼튼한 통나무 의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정말 통나무 의자인줄 알았습니다. 나이테도 있고, 껍질도 분명 나무인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시멘트로 통나무 모양을 만들고 페인트칠한 의자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긴 위자 하나에 여럿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필요 없이 한사람씩 따로 앉을 수 있어서 다들 좋아했습니다. 이리저리 옮겨 놓지 않아도 한자리에 붙박여 있으니 성가시지 않아 좋다 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정자나무에 기대어 있는가 하면 네 다리를 하늘로 들고 나뒹굴기 일쑤였습니다. 저만치 땡볕이나 풀덤불 속에 내동댕이쳐 있을 때도 허다했지요. 잦은 비와 땡볕이 얼굴을 할퀴었고, 바람이 한 번씩 집적거리고 지나갔습니다. 누군가가 앉으려고 나를 바로 놓은 일이 있는데, 내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해졌지 뭡니까. 다리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요. 결 곱던 나무는 잿빛으로 변해버렸고, 의자의 양끝 톱으로 잘라낸 자리는 삭아서 거칠게 나뭇결이 드러났습니다. 간혹 정자나무 밑에 나와도 사람들은 이제 술내기 장기도 두지 않습니다. 말을 잃고 시멘트 통나무 의자에 따로따로 한참씩 앉았다 갑니다.
나는 사람들이 앉기엔 너무 낡아버렸습니다. 정자나무가 제 그림자 늘이기 놀이에 지겨워하던 여름 내내 나는 나무 밑에 있었습니다. 쓸모가 있어 보이거나 튼튼했다면 누가 집어갔을지도 모르지만, 가져가봤자 화목으로 쳐 넣을 아궁이조차 막아버린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삭아가는 나무의자에 잠깐씩 걸터앉아 쉬었다 갑니다. 고추잠자리가 앉아 졸다가 깜짝 놀라 날아갑니다. 높은 데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작은 거미는 내 다리 사이에 거미줄을 치고 초파리 사냥에 골똘해 있습니다. 등판이며 다리 사이에 수북이 쌓였던 낙엽을 바람이 몰고 갈 때는 정말 허전했습니다. 
며칠 전 다리가 따가워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몸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속이 근질거리는 것도 같고, 니글거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정자나무더러 살펴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나 같은 것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물을 수도 없지요. 속을 박박 긁어대듯 아프고 허해지더니 어느 날 수많은 개미떼들이 내 다리며 얼굴을 마구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니겠어요? 흰개미 떼가 내 몸을 갉아먹으며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 모양입니다.
나는 지금 민들레 씨앗 두어 개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물기도 전에 찬바람이 불어 성급히 꽃씨를 날려 보낸 것인데, 그 중에 두어 개가 널빤지 틈 사이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나는 폭신한 먼지 속에 민들레 씨앗을 잘 감싸두었습니다. 봄에는 틀림없이 싹이 나고 꽃이 필 것입니다. 오래전 나무였을 때처럼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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