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는 엄마의 육아일기 < 40편>
■ 일하는 엄마의 육아일기 < 40편>
  • 최현옥 시민기자
  • 승인 2011.11.21 11:20
  • 호수 5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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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썹
옛 이야기 중 ‘하얀 눈썹 호랑이’가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는 눈썹을 통해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착한 척 해도 욕심 부리고 거짓말하는 고약한 사람들을 알아내서 잡아먹었다.
어느 날 호랑이는 하얀 수염 할아버지로 둔갑해서 세상구경을 나갔다가 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호랑이인 것을 단번에 안다.
그래서 호랑이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보고 착한사람을 돕는데 쓰라며 하얀 눈썹을 주고 사라진다. 사실 호랑이는 산신령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가슴 속에 하얀 눈썹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 또한 엄마가 되는 순간 하얀 눈썹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배속에서 열 달을 함께하고 서로 독립된 개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엄마는 눈빛만으로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묘한 힘이 있다.
엄마는 말도 못하고 오직 자신의 생각을 울음만으로 표현하는 아기의 뜻을 훤히 다 안다.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도 아이의 작은 기침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그 예민함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깊은 잠을 자다가도 아이의 작은 소리에 화들짝 깨어난다. 그런데 남편은 참 무디다. 아이가 옆에서 울어대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잘도 잔다.
어떻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을 자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 예민함은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엄마의 작은 목소리, 표정 변화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
상진이 같은 경우만 봐도 내가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 톤의 조그만 변화만으로도 나의 기분상태를 파악한다.
내 자신도 모르게 짖고 있는 표정을 아이가 먼저 알아차릴 때도 있다.
아이는 자다가 깨어도 나만 찾는다. 목마르다고 해서 남편이 물을 주려 해도 ‘엄마가…’하며 운다.
한번은 아이가 물먹고 싶다고 깼는데 남편이 물을 주니 아무 말 없이 컵을 받아든다. 그리고는 물을 먹는 동안 나보고 앉아있으라고 우는 것이다.
너무 졸려서 화가 났다. 그래서 아이가 물 먹는 동안 앉아 있다가 ‘나중에 네 자식한테 복수할거야’ 한 적도 있다.
 이런 엄마를 향한 아이의 예민함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잠든 후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서 몰래 나오면 어느 사이 알고 쫒아 나온다.
아정이는 장난감을 빨다가도 내가 장난으로 ‘누가?’라는 말만 해도 금방 알아차리고 울음을 터트려버린다.
아정이는 잠시라도 나와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듯 내 손을 꼭 쥐고 젖을 먹는다. 상진이도 밥을 먹으면서 내게 발을 꼭 대고 있다. 이유를 물으면 ‘엄마가 좋아서’ 한다.
이런 아이를 보면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꽁꽁 묶고 있는 기운을 느낀다.
그 힘은 아이가 엄마 배속에 잉태하는 순간부터 서로의 가슴속에 하얀 눈썹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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