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와 물대포의 불협화음을 보며
촛불 시위와 물대포의 불협화음을 보며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1.12.05 11:55
  • 호수 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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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복 칼럼위원.
“80만의 거란 대병이 압록강을 건넜다고 하옵니다.”
“800만의 고려인이 살 길은 항복뿐입니다.”
“아니오. 대동강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맺읍시다.”
지금부터 1200년 전, 고려 조정은 요동치고 있었다. ‘80만의 거란 대병이라니…’ 고려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패배의식에 빠져 제 한 목숨 이을 길이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 때, 서희(942-998)가 등장하였다. 그는 신흥 호족 출신이면서, 당당히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정계에 입문한 사람이었다.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땅을 내어주자는 것이오? 태조(왕건)께서는 북정(北征)을 통하여, 고구려의 구토를 회복하라 이르시지 않았소.”
“무슨 도리가 없지 않소? 지금 고려의 상황이 풍전등화이니…”
“허허. 위기는 잘 극복하면 호기가 되는 법이오. 나 홀로 적장을 만나 고려의 침공을 꾸짖고, 한 뼘의 땅도 허용치 않을 것이오.”
“미친 작자이군.”
“죽지 못해 안달이 난 게로군.”
서희는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 소손녕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서슬 퍼런 적진 속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적장을 꾸짖으면서, 일설로 거란 대병을 물러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의 구토를 회복하여 ‘동북 9성’을 쌓았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 기록된 ‘거란의 1차 침입(993)’이다.
1000년 이후, 우리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어느 나라에 가서 협상을 해도 금방 목을 떼어갈 적진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협상은 누가 봐도 강대국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일까?
‘상대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보도가 나온 뒤, 이삼일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아니라고 하였다’는 속 터지는 말을 듣게 되는가?
‘침묵은 금’이라는 논리에 빠져서 대화의 고리를 제대로 엮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끌려 다니는 현실에 분통이 터질 뿐이다.
한·미FTA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고, 야당과 시민들은 길거리에서 촛불시위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한·미FTA! 과연 누구를 위한 파이란 말인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경제인인가, 근로자인가? 도시민인가, 농어민인가? 상공인인가, 문화인인가?
누가 웃을 일이고, 누가 울을 일인가? 웃을 사람 어찌해야 하고, 울을 사람 어찌해야 하는가?
한·미FTA가 지금 한국 사회를 이분법으로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할 일인데, 오로지 ‘아(我)와 피아(彼我)의 쟁투’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서희가 그립다.
서슬 퍼런 적진에서 적장에게 호통을 치며, 일설로 상대방을 조목조목 일깨우고 일국의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킨 그분이 그립다.
진정, 우리 시대에는 그런 분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인가?
FTA와 WTO는 별개이지만, 전 세계가 WTO 체제로 전환되면서, FTA의 실효성이 극대화 되고 있다.
이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약소국을 중심으로 ‘반세계화 운동’이 격렬하듯이, ‘반FTA 운동’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찬성과 반대 쪽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위정자와 협상 담당자들은 할지(割地)적 등가(等價)론에만 빠지지 말고, 우리나라의 순익과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는 충정을 가져야 한다.
부디 FTA가 우리 민족의 양지와 음지를 극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 말고, 촛불 시위와 물대포의 불협화음으로 사회통합을 더 이상 저해하지 않게 하기를 빈다.
역사의 뒤편에서 서희, 그분이 안타깝게 여겨 혀를 차지 않게 위정자들이 생각의 전환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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