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한 살
내 나이 마흔 한 살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1.12.12 10:12
  • 호수 5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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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한바탕 첫 눈이 쏟아질 듯한 겨울 하늘이 송년의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인간이 정한 시간의 굴레 속에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산다.
“20살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기대했던 20살인데 19살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큰 딸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풋풋한 십대를 벗어나 성인의 관문인 스무 살에 대한 꿈과 계획에 부풀었다가 생각과는 다른 스무 살을 보내며 많이 아쉬운가 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고 때론 서럽기도 하다. 20대 초반에 남편을 만나 남보다 빠른 결혼을 했던 나는 나이 먹는 것이 좋았다. 아이 셋을 낳았을 때 또래 친구들도 결혼을 하는 나이라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세월의 빠른 흐름이 좋기만 했다. 그러다 서른을 맞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비전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또 시간은 덧없이 흘러 서른여덟이 되었을 때 마흔을 눈앞에 두고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다.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처럼 마흔의 산은 높기만 했다. 무엇을 하며 살다가 올 것 같지 않던 마흔 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가!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직업도 바꾸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살았는데 마흔은 나를 무력하게 흔들어 놓았다. 어떻게 이겨냈는지 생각도 나지 않게 마흔의 홍역을 치르고는 요즘은 오히려 나이 먹음의 유익함을 누리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은 열아홉 꽃띠인데 신체 나이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가슴앓이를 했던 것 같다.
공자가 “내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바로 서고, 마흔에 세상일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오십에 하늘의 뜻을 알고, 육십에 귀가 열리고, 칠십에 하고자 하는 바를 쫓으나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내 나이 마흔 한 살. 공자가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불혹을 넘어서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편안함과 사람살이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중심을 갖게 되니, 지천명을 지나 이순이 되면 얼마나 더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까 기대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나이 먹는 것을 감추고 젊어지려 노력한다. 잔주름을 없애고 눈가의 처짐을 수술로 올려주느라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팽팽한 피부를 위한 고가의 화장품도 불티가 난다. 2년 전 운전면허증을 재발급하려고 집에서 가까운 사진관을 찾았는데 얼굴을 교정해 실제보다 훨씬 젊은 내가 만들어져 지금 내 운전면허증에는 나랑 닮은 사람이 미소를 짓고 있다.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는 곳보다 포토샵으로 멋지게 고쳐내는 사진관을 선호한다.
1955년 ‘추억의 장미’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상을 수상했던 이탈리아 여배우 안나 마냐니는 사진 기자들에게 “나이 들어 눈가에 진 짙은 다크 써클과 깊게 패인 주름을 결코 지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를 대표했던 여배우 마냐니는 부모의 버림으로 로마 빈민굴에서 어렵게 자라 유랑극단과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다 뒤늦게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함을 추구하는 여느 여배우들과 달리 굴곡 많은 삶이 얹어진 자신의 얼굴을 당당하게 여겼다.
“나이 먹음이란 추억의 보석함을 채우는 과정”이라 얘기한 신동준 시인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올 해도 색색의 영롱한 빛깔의 보석을 채우느라 열심히 달려온 것이다. 어느새 함박꽃을 터뜨리며 내리는 눈에게 내게 있어 나이 먹음은 서글프기보다 설레는 일이라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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