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사 ~고이 접어 나빌레라…
얇은사 ~고이 접어 나빌레라…
  • 최현옥
  • 승인 2003.01.09 00:00
  • 호수 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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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개짓은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일깨움
소년에게 나비는 하나의 유혹이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먼 들판을 하늘거리며 나는 나비의 날개 짓은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일깨움이었다.
“고향집 뒷산에서 참나무 수액에 앉은 나비를 조심스럽게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천출신으로 서울 남강고등학교에 재직중인 김용식 교사(58)는 지금도 나비와 만나는 순간은 순수하고 숭고하다. 어린 시절 나비의 아름다운 빛깔과 독특한 문양에 매료되어 함께 해온 세월은 그의 검은머리를 벌써 파뿌리로 만들었다.
그의 나비 사랑은 나비 표본 80여 마리가 들어가는 규격상자 1백여 개와 최근 30년 간 전국을 답사하며 수집한 나비표본으로 만든 ‘원색 한국 나비도감’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나비 전체 종류인 1백99종에 대한 분포와 생태, 출현시기, 변이에 대해 수록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개체변이와 지역변이를 설명함으로 나비도감에 기록해야 할 모든 항목을 기술한 정통 학술도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또 유사종류의 동정을 돕기 위해 변이사진과 함께 구별법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이에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순수과학 분야의 우수학술도서로 뽑혀 현재 중앙도서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얻었다.
물론 김씨가 나비에 매료되어 시작한 일이지만 화려한 조명을 받기까지 숨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씨는 교단에 선 1971년부터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전국을 누비며 나비를 채집했다. 항상 시간이 넉넉지 못해 잠을 아껴가며 채집을 했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늘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희귀한 나비들과 만나고 새로운 생태를 발견할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그가 나비를 수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주위에 전해지면서 전시회 문의도 많이 들어왔다. 지난 91년에는 잠실의 한 백화점 요청으로 한국나비특별기획전을 열었으며 일산 꽃박람회 때 나비 수 천 마리를 날려보내는 행사를 기획했다.
김씨는 자신이 채집한 나비를 생물수업에 연계하였으며 나비생태탐구 특별활동반을 운영했다.
“나비를 보며 영혼이 맑아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입시위주의 학업에서 벗어난 수업이 진행되는 것 같아 참교육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김씨. 이번 도감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문장비와 컴퓨터 작업 역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제자들은 졸업 후 남강자연생태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어 그의 보람을 높이고 있다.
“주위 학계에서 높은 평을 받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는 김씨는 몇 년 후 좀더 완성도를 높인 보증판을 출판할 계획이다. 또 나비표본을 후학들이 연구활동에 사용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고싶다. 아직 국내에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지만 앞으로 생긴다면 자신이 소장한 자료를 기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나비에게 자신의 열정을 태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김씨는 환경파괴로 나비의 종이 주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캘리포니아의 말리부 해변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개 짓이 몇 개월 뒤 말레이시아의 계절풍을 유발한다’는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처럼 자신의 묵묵한 실천이 후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씨의 소망은 뒷산에서 만난 나비를 통해 자신이 순수를 배웠듯이 세상사람들이 나비를 통해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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