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는 즐거움
시골사는 즐거움
  • 장호순 교수
  • 승인 2012.01.21 10:14
  • 호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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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 자이, 힐스테이트, 필하우스, 더샾 등 요즘 아파트 단지 이름들이다. 그 뜻은 모르지만 어쨌든 세련되어 보인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이름 뒤에 마을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살지만 정서적으로 시골마을의 인정을 느끼고 싶은 도시 거주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다.
산골생활 20년째인 우리부부의 집 주소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41번지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소를 묻는 사람들에게 주소를 알려주면 약간 놀라는 기색이다. 아파트 동호수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런 주소만으로 우편물이 들어갈까 의아해한다. 산골에서 지난 20년을 살았지만,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잠깐 부친직장 때문에 경기도 동두천으로 이사가 산적도 있었지만, 초중고와 대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마쳤다. 
도시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우리집에 들리면 모두 예외없이 얘기한다. “참 공기좋다”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한다며 부러운 기색을 한다. 그러나 한적한 외딴 집에서 사는 데에는, 특히 겨울을 보내는 데에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
큰 길에서 집까지 500미터 정도의 논길은 겨울철 눈이 쌓이면 통행불가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항상 일기예보를 점검한다. 눈이 오면 큰길가에 차를 주차해놓고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철 시골주택의 최대애로 사항은 난방비이다. 우리집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겨울내복이 필수품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적한 시골집에 살면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 또한 적지 않다. 온 세상이 얼어버린 한 겨울에도 즐거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겨울철 내가 가장 반기는 손님은 갖가지 텃새들이다. 사철나무 숲에 둥지를 튼 참새 떼에서부터 소나무 기둥을 바쁘게 누비는 딱따구리까지 각종 새들이 매일 찾아온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나무 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누비는 새들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겨울철 또 하나의 즐거움은 눈 치우는 재미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눈삽으로 한줄 한줄 치워나가면서 댓가없는 노동의 즐거움을 맛본다. 깨끗하게 치워진 길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보며 노동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흰눈으로 뒤덮힌 세상에 좁은 길 하나 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연속의  내 위치를 재확인하고  겸손해진다.
시골집에 살면 미안할 때도 많다.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을 배달하느라 꼬불꼬불 논밭길을 헤치고 올라온 택배기사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래도 제일 미안한 것은 도시의 아파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다. 자연과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채 바쁘게 아파트 빌딩숲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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