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운다
아이들이 운다
  • 신흥섭 칼럼위원
  • 승인 2012.02.27 12:50
  • 호수 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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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검찰 실무 수습을 하던 중 두 명의 여자 아이들이 죄수복을 입고 손목에는 수갑을 찬 채 내 앞에 왔다. 사건의 내막은 세 명의 여학생들이 두 명의 여학생을 노래방으로 데리고 가서 구타를 했고 피해 아이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위에서 노래도 불렀고 심지어 피해 아이가 옷을 벗고 춤을 추게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도 잘못을 뒤늦게 반성하고 있고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방황을 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한명의 아이는 얼마든지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한명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결국 이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을 석방시켜 주면서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을 받도록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나의 선택에 있어 잘잘못을 떠나 개인적으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 두 피해자들의 진정한 가해자는 나를 비롯한 바로 우리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문제의 원인과 대안으로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지면 관계상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먼저, 가해 아이들 모두 부모님이 오래 전 이혼을 하였고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요즘 시대에 이혼을 굳이 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다시 한번 거듭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설령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만은 꼭 놓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부모의 빈자리는 쉽게 다른 무엇으로 채울 수가 없고 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게 된다.


둘째로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고 싶다. 짧은 삶이지만 내 삶의 잣대로 보건데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사랑, 배려, 관계를 잘하는 사람의 밑에서 일하게 되어 있다. 물론 양자를 다 잘하면 좋겠지만 무게를 둔다면 후자에 더 두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현재 사랑, 배려, 관계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랜 친구의 아들이 얼마 전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자식을 맡길 수 없다며 중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말이란 콩나물에 주는 물과 같다는 격언이 있다. 대부분 그냥 흘러내리지만 수없이 물을 주어 아주 적은 양의 물이 콩나물에 닿아 그 콩나물을 자라게 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공부의 물만 주지 말고 사랑, 배려, 관계의 물을 더 많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셋째로 문제가 되는 학생의 처우 문제이다. 정치나 경제 뿐 아니라 잘못된 일에 있어서도 2%의 사람이 이를 이끌어 간다. 단순히 잘못된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하여 용서나 처벌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문제가 되는 학생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아이들의 아픔을 품어주고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학교나 소년원의 교정과정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서천 자체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1:1 멘토를 활성화 시키면 어떠할까? 청소년에 관심 있는 분들이 사랑으로 아이들과 자주 연락을 하고 한 달에 1, 2회 정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 효과를 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멘토들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만남의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왕따, 자살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얼마나 이슈화 되고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단지 이슈화만 되고 다시 묻혀질까 두렵다.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가슴에 메아리친다. 피해 학생이 울고 가해학생이 운다. 왕따 당하는 학생이 울고 왕따시킨 학생들이 운다.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 학생이 울고 결국 그 가족들이 울며 이 사회가 같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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