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화법, 자연에서 배워요
사랑의 화법, 자연에서 배워요
  • 최현옥
  • 승인 2003.01.23 00:00
  • 호수 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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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를 뛰노는 숭어처럼 경쾌하고 맑은 음악이 흐르면 이른 아침 화사한 햇살을 받은 식물들이 춤을 춘다. 줄기와 가지는 절로 어깨춤을 추고 뿌리는 들썩이며 자동으로 공급되는 사랑의 영양분을 받는다. 식물들은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하고 탱글탱글한 열매를 맺는다. 식물들과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는 구인회(55)씨의 입가는 어느새 미소를 그린다.
“음악을 통해 식물과 내가 사랑의 대화를 속삭이듯 더불어 농사를 짓는 세상을 꿈꿉니다”
비인면 구복리에서 방울토마토 시설농사를 짓는 구씨는 빚쟁이다. 농사를 지으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역의 주민들과 햇빛, 토양, 바람, 식물들이 그를 도왔기 때문. 물론 그의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재해는 자신을 굳건히 다지기 위한 만물의 시험이기에 감사하다.
그의 이런 마음을 방울토마토들은 알고 있었을까? 타지역에서는 날씨가 습해지면서 곰팡이가 발생, 농사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지만 구씨의 토마토들은 잔병치레 없이 곱게 자라주었다. 지난 9일 농산물거래 시장에서 첫 선을 보인 토마토는 호평을 받으며 높은 가격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린음악시설을 갖추고 친환경농업을 실현하고 있는 구씨, 그가 시설농업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농업기술센터에서 도움을 받으며 이다.
선진농업을 꿈꾸며 논농사에서 시설농업으로 탈바꿈하며 시작한 딸기농사. 구씨는 규모를 늘려가며 선진지 견학, 농업지도소 교육 등을 통해 시설농업의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갑작스런 가격하락으로 위기가 다가왔고 경기와 평택 등 외지인들과 단합하여 작목반을 구성, 모종을 구입하고 농산물 시장에 뛰어들며 다양한 자구책을 찾았다. 그러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았다. 선진농업과 친환경농업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 구씨는 1994년 자동화 시설을 갖춘 오이농사와 토마토농사를 다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이놈들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니까 살아간다”며 겨울 속 여름을 연상시키는 하우스 안을 천천히 바라보던 구씨의 얼굴엔 잠시 먹구름이 스쳐간다.
지난해 태풍 루사로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오던 8백여평 규모의 오이하우스가 피해를 입었으며 몇 해전에는 자기 땅을 희사하여 주민들과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농산물 창고에 화재가 발생했다.
“주위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멍든 농심을 가다듬기 어려웠을 것이다”는 구씨는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주위 분들에게 전수하며 보살핌에 답하고 있다.
구씨가 이번 출하에서 높은 가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딸기농사를 지으며 유통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직접 시장에 뛰어들은 것. 시장의 도매업자와 관계를 맺고 지역별 시세전망을 알아보는 등 정보망을 구축해 가고 있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은 최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농업에 임하는 그는 오염되지 않은 식탁을 만들고 싶은 꿈과 함께 친환경농법으로 자신의 터를 닦고 있다.
“요즘 유가가 상승하면서 시설농업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구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농사방법을 찾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아무리 좋은 기술과 대지를 가지고 있어도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며 선진농업의 포부를 밝혔다.
“텔레비전에서 83세 된 노인이 농사짓는 것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는 구씨는 “선진농업은 농사짓는 기술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 대한 자부심과 품앗이처럼 상부상조하며 농촌을 지키는 것이다”며 이제 모두 마음을 열어 농업인 서로간 그리고 농산물간 소통의 물꼬를 트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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