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이야기와 지금 여기
바다 건너 이야기와 지금 여기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2.07.16 13:33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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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방 도시 의회에서 남녀 시의원끼리 연정의 불이 붙었다. 남녀상열지사에 국경의 벽도 없다는데 시의원이란 신분이 뭘 그리 대단한 얘기꺼리냐 하겠지만, 문제는 남성 의원이 이미 아내를 가진 유부남이었다는 거다.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이 요즘 세상에 뭘 그리 대단한 사건이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이 유부남 의원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애정행각(소위 ‘불륜’)을 만천하에 공개했다는 거다. 아무려면 그런 뻔뻔한 일을 자기 입으로 ‘만천하’에 알렸겠느냐 하겠지만, 의원이 둘의 관계를 밝힌 곳은 사적인 자리도 아닌 의회 공식행사에서의 연설 도중이었다.


그는 자신과 동료 여성의원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떠벌였고, 시민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의 부인도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이 말을 들었다. 놀라 까무라칠 순간에 다른 여성의원들이 “세상에나, 이렇게 역겨운 일이 어딨담.”하고 외치며 부인에게 달려가 껴안고 위로해주었다나.
그러면 이 불륜 커플은 조만간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최소한 부끄러워 자진사퇴라도 하지 않았겠나 싶겠지만, 이 마초 같은 의원님과 뻔뻔녀 의원은 이후 반년이 넘도록 여전히 의원으로 재직 중이시다.
그렇게 하늘도 두렵지 않은 사랑이라면 뭔가 절실한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 이해라도 해보고 싶겠지만, 문제는 일곱 달이 지난 요즘 이 커플은 결국 여느 막장남녀나 다름없이 치고받고 싸우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 뉴스 메이커로 등장했단 거다.


아무리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겠는가 하겠지만, 지금은 이미 ‘말세’ 아닌가. 가만!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이란 말은 틀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황당 뻔뻔 스토리’의 무대는 대한민국 어느 도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다. 다행이다. 사건은 저 멀리 바다 건너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샌 퍼낸도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영화도시 할리우드에서 가까운 인구 20만의 도시인데, 물론 이 사건은 영화 스토리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뻔뻔남 마리오 에르난데스는 불륜이 공개되었을 때 동료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윤리위에 제소하거나 제명동의안을 처리하는 게 상식일 터. 하지만 의회를 특정 정당이나 파벌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를 보호해주었던지 시의원 가운데서 돌아가면서 맡는 시장직을 무사히 수행하고 여전히 시의원으로 잘 지냈다. 이쯤 되면 이 마초 의원님, 지역사회 골목대장이라도 되었던 듯. 혼외정사를 처벌하는 간통죄가 없는 사회다 보니 그의 자격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지난달 두 남녀는 뺨을 맞았네 목을 졸랐네 얼굴을 할퀴었네 피가 났네 하면서 서로 고소, 맞고소하여 사이좋게 상대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 같다.
시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마리오 에르난데스와 라 토레 커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시 의회는 시 경찰서의 질 카리요 서장에 대한 직위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정당한 사유도 공개되지 않았고, 해고된 서장도 사유를 통보받지 못했다. ‘시의원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괘씸죄를 산 거 아닐까요’라고 짐작할 뿐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샌 퍼낸도는 이제 무법천지다. 한 지역사회로서는 더할 수 없이 불행한 재앙을 맞고 있는 셈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막장’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웬 지방의회 뉴스가 무더기로 떠올라온다. 이건 바다 건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는 지역사회 얘기다. 기초의회 의장 부의장 하다못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파벌다툼이 벌어지고, 뒷돈이 오가고, 파벌간의 밀실합의와 그조차 배신하는 행위와, 그래서 단상을 점거하며 치고받고 싸웠다는 얘기, 그래서 고소 고발했다는 얘기들이다. 심지어 의장선거에서 떨어지자 자신이 동료의원을 1천만 원으로 매수했다가 배신당했다고 스스로 폭로하고 자살한 군의원, 의장 선출이 약속대로 안 되었다며 야구방망이로 자신의 차 유리를 박살낸 시의원도 구설수에 올랐다.


많지도 않은 인원으로 오순도순 지역 현안을 상의하면 좋을 지역 의회에서 그 ‘장’ 자리 하나 놓고 무슨 집착이 그리도 집요한 걸까. ‘장’에게 주어지는 월 수백만 원의 활동비와 기사 딸린 자가용과 명예 때문이라나. 알량한 활동비와 직급, 명예와 특권에 눈멀어 체면도 의리도 우정도, 무엇보다 군민의 기대도 뒷전으로 하고 욕설 몸싸움과 고소 고발의 추태를 마다않는 지역의회라면 바다건너 불륜 시의원 커플 비웃을 일이 아니다.


예상치 않았지만, 서천군의회의 분란도 전국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여성 의원이 의회사무실 안에서 시민단체 대표라는 사람으로부터 막말 봉변을 당했다는 얘기인데, 이 의원의 호소를 특정 파벌로 여겨지는 의원들이 외면했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파벌 간 마음의 벽이 이토록 높다면 심각하다. 시민단체라 해서 무소불위로 의회를 짓밟는 걸 눈감아주는 파벌이라면, 언젠가는 그들 또한 똑같은 봉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어쨌든 의회가 건재하고서야 파벌도 의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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