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봉숭아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2.09.03 11:59
  • 호수 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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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집 뒤꼍에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 옆에는 해마다 봉숭아, 채송화, 백일홍이 눈부시게 피었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나 누이는 가끔 뒤꼍 장독대를 찾았다. 커다란 장독대 옆에 숨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 누이의 좁은 어깨를 안쓰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던 내 고향집 빨간 봉숭아.
그 뒷모습이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나보다 늦게 태어나 자기보다 오라비만을 먼저 챙겨주었던 누이. 돈 벌겠다고 고향을 떠났던 누이이련만 일생 큰 돈도 벌지 못하고 평범한 아내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다. 

감나무가 있고
달빛이 있고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봉숭아꽃이 피었습니다
그 옆에서
누이는 많이도 울었습니다

애틋한 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야하는 것인가 봅니다
- 필자의 「봉숭아」전문

누이도 나처럼 이순에 들어섰다. 주름살이 늘고 머리 위에는 두껍게 하얀 눈이 쌓였다.
“참, 세월 빠르지. 뜬구름 같아 세월이.”
옛날 어른들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 제사 때나 눈발처럼 찾아오는 누이. 어떤 땐 매니큐어 대신 손톱에 빨간 봉숭아물을 들이고 온다. 그 분홍빛 반달이 아득히 산을 넘어갈 때 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봉숭아를 바라보면 왜 그리도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인지. 감나무, 달빛, 장독대가 생각나고 누이가 생각난다. 저녁 바람, 저녁 햇살도 생각난다. 누이는 거기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고 그 눈물 자국을 혼자서 지우고 또 지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울었고 여자들은 장독대 곁에서 훌쩍거렸다. 잊을 때도 되었건만 가난했던 그 때를 잊지 못하는 것은 나의 못된 성정 탓이리라.
누가 예쁜 꽃을 보면서 그랬다 한다.
“저 꽃 때문에 내가 죽을 수 없어.”
나도 그 짝이 되어 가는가. 듣기만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봉숭아.
무엇이든 조금은 서러워야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다. 누이 같은 봉숭아가 바로 그런 꽃이아닐까.
끝없이 저며와 가슴에서 해마다 피고 지는 내 고향집 빨간 봉숭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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