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위해 해야 할 일
행복해지기 위해 해야 할 일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2.09.24 10:22
  • 호수 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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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돌아왔다. 추석을 즐겁게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지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명절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특히 많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한낱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행복해지고 불행해진다는 건 서글프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도 있다. 오죽하면 ‘밥이 하느님이다’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생계가 위태로워지면 사람들은 생계의 노예가 된다. 생계가 해결된 뒤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염치를 알고 예를 차리고 문화 예술에도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인심이 쌀독에서 나온다는 말도 그런 의미다. 한 사회를 지배하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서 최대의 미덕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백성이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예를 차리게 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인심이 후해져 사회에 흉악한 범죄나 지나친 경쟁이 사라져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일이다.


정치나 권력 따위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관련해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그는 권력에 아부하여 부와 명예를 얻는 대신 마을 밖의 토굴 같은 데 살며 거친 음식으로 생계를 때웠다. 당대의 지배자였던 알렉산더 대왕이 흠모하여 일부러 찾아왔을 만큼 명성이 자자했으나 그는 한 번도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사는 일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를 아는 많은 유력자들이 그를 돕고 싶어 했으나 그는 그것도 원하지 않았다. 노지에서 마음껏 햇볕을 쬐며 유유낙낙 사는 삶을 방해받지만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날도 제법 유명한 철학자가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다. 적당히 권력에 협조하여, 학자며 정치가로서 한창 잘 나가는 아리스토포스란 사람이었다. 그때 마침 디오게네스는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식사라는 것이 어땠을지는 뻔하다. 길가 어느 밭에선가 훑어온 콩을 깍지까지 구워 낡은 접시 위에 놓고 손으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먹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친구이기도 한 아리스토포스는 혀를 차며 말했다.


- 가장 유망했던 철학도가 어찌 콩깍지나 구워먹고 있는가. 고생도 사서 한다지만 그만하면 충분히 겪어보았지 않은가. 이제 마음 고쳐먹고 나와 함께 왕에게 가세나. 왕을 적당히 구슬리는 방법만 좀 안다면, 그따위 콩깍지로 연명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러자 아부라고는 전혀 천성에 맞지 않는 디오게네스가 콩을 입에 문 채로 대답했다.
-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이보게. 콩깍지로 연명할 줄만 안다면, 그까짓 왕을 구슬려 모시는 방법 따위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네.


왕을 모시는 일과 콩깍지로 연명하는 일,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콩깍지로 연명하자면 위장이 튼튼해야 하고, 왕을 구슬려 모시려면 비위가 튼튼하고 낯가죽은 두꺼워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불행은, 인간이 콩깍지만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조강(糟糠=변변치 못한 음식. ‘조강지처’라는 말에 쓰임)만 구할 수 있어도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던 인심이 언제부턴가 이렇게 변질되었다.


사람들이 콩깍지로 연명할 줄만 안다면 남에게 기대고 의존할 필요가 없으련만 현대인은 그 이상의 것을 구하기 때문에 남에게 기대고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니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필연적이다.


대통령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음 대통령직에 지원하는 여야의 후보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야당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세상이 ‘시민대표’라고 부르는 전 서울대 교수 안철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 세 사람이 이번 대선의 ‘빅 쓰리(Big 3)’ 후보다. 출사표는 그 옛날 시대의 부름을 받고 세상 앞으로 나온 삼국지 제갈공명의 그것처럼 비장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눈물 나도록 감동적인 내용도 있다. 누가 얼마나 진지하며, 또 진실하게 그 약속을 지킬 것이냐가 문제다. 


본래 선거란 ‘지금까지 좋았으면 여당을 찍고, 불만스러우면 야당을 찍는다’는 것이 기본 원리다. 옛날 익숙했던 선거 구호 가운데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야당) “바꿔봤자 별 수 없다. 안정만이 국력이다”(여당)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대로가 좋다는 여당과 이젠 바꿔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 가운데서 유권자는 자기 마음과 같은 쪽을 선택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방정식이 좀 복잡하다. 여당을 대표한 박근혜 후보조차도 ‘바꾸자’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가 바꾸네’라는 구호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나왔다. 야권의 다른 두 후보의 개혁에 대한 의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5년의 정치가 국민에게 별로 좋지 않았다는 데 여야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누가 이 정치를 새롭게 바꿔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데 더 적합한 사람일까. 그 판단과 선택은 국민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콩깍지로 연명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시인,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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