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떠난 친구
가을에 떠난 친구
  • 한기수 칼럼위원
  • 승인 2012.10.22 11:02
  • 호수 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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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침저녁으론 쌀쌀한 바람결이 온몸을 감싸고 지나가고, 들녘엔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벼 이삭이 출렁이며 깊어가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알리듯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가을만 되면 외로움과 그리움에 색색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가을 산을 자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이유인즉, 아주 친한 친구가 가을의 어느 날 아주 멀리 긴 여정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술과 담배도 안 했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누구보다 아주 잘했던 친구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메스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하여 몇 곳의 병원을 찾았고, 병원에서의 진단은 뜻하지 않은 날벼락 같은 진단이 나왔다. 다름 아닌 위암 말기였다.


난 친구에게 진단 소식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했던 친구였으며 그 친구는 출판업을 운영하던 친구였기에 우린 자주 만나 문학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밤이 새는지도 잊으며 논하던 친구였다.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친구는 그 후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결국 화려한 단풍잎과 함께 먼 여정을 떠났다.


다정다감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논하던 친구가 떠난 후 난 몇 개월을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을 받았고, 삶의 허무함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 친구는 긴 여정을 떠나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네와 함께했던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며 나를 위로해 주곤 내 곁을 떠났다.


난 그 친구의 빈자리를 메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후 가을 산을 자주 찾는 버릇이 생겼다. 가을 산에 오르면 왠지 친구와 함께 하는 것 같고, 친구가 새가 되어 산행의 길 안내를 해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는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때론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 생각해 보면 다 부질없는 일이고, 감사한 일이 더 많은데 우린 잠시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연의 섭리처럼 봄에 새싹이 돋아나 여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가을에 수확하는 행복을 느끼며 겨울을 맞으면 참으로 감사한 한 해가 될 터인데 우리는 늘 더 많은 욕심을 부리다 보니 부질없는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번 주말도 깊어가는 가을…… 가을에 떠난 그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의 시간을 뒤돌아보면서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잎과 아름다운 산행을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하려 한다.


<시인 소설가/hankiso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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