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바이러스’ 최할머니
‘해피 바이러스’ 최할머니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2.11.12 10:46
  • 호수 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할머니는 올해 76세이다. 150cm도 안되는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얼굴, 어금니 은이빨이 보이도록 환하게 웃으시는 분이다. 할머니를 알게 된 지 9년째인데 언제 만나도 할머니의 밝은 얼굴에 마음까지 환해진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 어려운 살림으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지만 불평없이 감사가 넘치는 분이다.


무릎 관절염이 심해 오랫동안 절뚝 걸음을 걸으셨지만 3년 전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잘 되어 엘리베이터 보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평지에서는 잰걸음으로 젊은이를 앞서 가신다.
할머니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남편 김 할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몸이 약해 힘든 일은 할 수 없어 변변한 직업 하나 가져보질 못했다.


당연히 경제적 부담은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었다. 판자집 한 켠에 포장마차를 내어 연탄곱창구이로 4남1녀를 학교 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셨다. 몇 해 전 관절염이 심해져 장사를 그만 두었지만 할머니가 연탄불에 구워준 양념곱창의 맛은 별미였다. 태어나 처음 먹어본 곱창맛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웬만한 곱창을 먹어서 맛있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이다. 쓰러져가는 판자집 긴 의자에 걸터앉은 손님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며 예전의 명성을 자랑하곤 하신다.


얼마 전 할머니의 집에 경사가 났다. 월 10만원 주던 곰팡이 찬란히 피는 집을 떠나 7평 짜리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재산이라고는 포장마차 자리 몇 평이 고작인데 재개발에 들어가면 보상금이라도 받아 조그만 방 한 칸 얻어 나가려 했으나 그나마 제외되자 어려운 살림이지만 이번에도 자녀들이 마음을 모아 부모님의 집을 지어 드렸다. 할머니 키에 맞춘 씽크대가 있는 부엌과 화장실이 집 안에 들어앉은 거실 겸 안방의 원룸이 멋지게 만들어졌다. 1년 내내 문 앞을 지켰던 요강도, 벽을 수놓던 곰팡이도 이젠 굿바이다.


내 주변에는 4, 50평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제법 많다. 방 하나를 시청각실로 만들어 문화생활을 즐기는 이도, 런닝머신, 자전거 등 운동기구로 꾸며놓은 이에게서도 행복을 보았지만, 그들 거실만도 못한 7평의 작은 집에 깃든 감사와 기쁨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담한 집을 지은 후 잔칫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초대하신 할머니는 “내 생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다 갈 줄 누가 알았냐”며 세상을 다 얻은 양 기뻐하셨다.


할머니는 ‘해피 바이러스’다. 몸 약한 남편이 목돈 한 번 쥐어준 적 없다며 할아버지 없는 사이 속내를 보이셨지만 ‘당신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산대. 난 못 살아’라며 할아버지의 기를 살려주시는 최할머니. 이런 할머니에게 전염되신 김할아버지도 ‘우리 마누라가 최고여’라며 여느 신혼부부 못지않은 금슬을 자랑하며 사신다. 이런 두 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자꾸 헤죽거리게 된다.


요즘 할머니는 고구마를 캐러 밭일을 다니신다. 매일 아침 봉고차를 타고 멀리 논산까지 가서 일하고 일당 5만원을 받는다.
나이 먹은 사람 일 못한다고 짤릴까봐, 비싼 돈주는 주인에게 피해줘선 안된다며 1등으로 일한다는 할머니는 이렇게 벌어놓은 돈으로 올 겨울도 거뜬하게 지낼 수 있다며 즐거워하신다.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감사, 힘들지만 돈 벌 수 있어서 감사, 따뜻하니 좋은 집 있으니 감사, 등 긁어줄 낭군 있으니 감사하다는 해피 바이러스 최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