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숨통을 막는 개발 계획
여전히 숨통을 막는 개발 계획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2.12.03 13:19
  • 호수 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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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400년경에 활동한 철학자 플라톤은 왜 ‘철인통치’를 이야기했을까.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당당하게 받아 마시고 죽었기 때문일까? 소크라테스는 왜 회피할 수 있던 사약을 굳이 마셨을까.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 방면에 문외한인 처지에 주석을 달 능력은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상사회를 가꾸는 데 민주주의로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 4대강이 망가진 것, 이제 보니 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와 무관하지 않았다. 히틀러도 선거로 당선되었지 않았나. 곧 대통령 선거가 직접투표로 실시되는데,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이후 선량들이 펼치는 정치와 행정의 결과는 이상사회와 얼마나 가까웠던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돼 있다면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더라도 이상사회에 비교적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이 드물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는 모양이다. 플라톤이 고민했던 시대처럼, 민주주의 맹아기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도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군사독재의 압박에서 헤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천박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회 구성원의 교육 높낮이와 관계가 크지 않다.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사회도 마찬가지다. 말초적 권력과 금력을 자극하는 약속으로 표를 구걸하려는 이가 총장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고 자조하는 대학교수가 많은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는 노릇이다. 권력의 총체적 집단인 검찰을 직선제로 선출해도 비슷한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 패거리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사회정의는 물건너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선거를 앞두고 번번이 발표되는 우리나라의 각종 개발계획들은 진정 내일을 위해 진정 바람직한가. 다음세대에 미칠 경제적 부작용과 생태계 교란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 표를 던질 유권자, 그리고 다음세대 유권자의 행복과 부합될까?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내용의 개발공약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건만, 환호부터 연발하는 경향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개발이 국가와 지역의 경제적, 또는 생태적 숨통을 조일 게 분명하다는 의심이 들지만 얼토당토않은 개발계획은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낸 정당마다 경쟁적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지 않지만 유권자의 귀에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누가 철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철인정치는 사실상 공허하다. 오죽 답답하면 플라톤이 그런 말을 남겼겠는가. 독재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은 선거라는 틀이 민주적이라는데 선뜻 동의하고 싶겠지만,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생략된 선거는 선동과 모략이 춤춘다. 충분한 고민 없이 선택한 선거의 결과는 지금까지 경험을 살피자니,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권력과 금력에 대한 탐욕과 패거리 문화가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는 분위기에서 선거가 민주주의를 더욱 왜곡했다.


철인을 천거할 수 없는 마당인데, 이제와 선거 이외의 방법을 찾자는 뜻이 아니다. 선거가 이상사회로 가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인식이라도 갖자는 거다. 자식을 키우는 유권자라면, 지금과 같이 후손의 숨통을 막는 개발 계획이 공약으로 난무되지 않아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여전히 천박한 개발 계획이 유권자들을 현혹하는데 안타까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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