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만나는 아이들
문학으로 만나는 아이들
  • 이정아 칼럼위원
  • 승인 2013.02.25 11:05
  • 호수 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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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여러 단체에서 계획한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종종 있다. 과거엔 ‘독서논술’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엔 문학 수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변화가 반갑기만 하다.


 부모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림책이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문학을 체험하게 한다. 때로는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이를 더 기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직접 읽고 쓰면서 스스로 문학의 주체가 되어간다. 적극적으로 창작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의 일기는 문예창작의 보배라고 생각한다. 비뚤비뚤한 글씨 사이로 아이의 생각과 말이 펄떡펄떡 뛰어노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학년 동화를 쓰려는 이들이 그 시기의 아이들 일기를 보면서 습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아이들은 계속 문학 작품을 읽는다. 시와 동화, 판타지물이나 추리물,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장르를 선택해서 아이들은 책 속에 빠져든다.
문학에는 가보지 못한 길과 체험하지 못한 시공간과 삶,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나와 닮은 주인공과 너무나 다른 타인의 감성이 숨어 있다. 문학을 통해서 아이들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들이 잠시 주춤한다. 논리적인 사고를 강요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저 즐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숙제처럼 남겨야 할 것이 있다는 걸 안 순간 아이들은 책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자꾸 내 생각이

 무엇인지를 뒤돌아보고 남과 비슷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게 된다. 생각이란 놈이 내 몸 어딘가 있기나 한 것인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나만의 생각과 타인과 비슷한 글 사이에서 아이들은 자주 길을 잃는다. 안타깝게도 문학은 점점 즐거움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 되어간다.


  문헌서원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반가웠다. 아이들이 문학을 그저 즐기기만 했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동안 고민하며 강의 계획을 짰다. 그리고 지난 1월 말부터 ‘문헌서원에서 만나는 글쓰기의 즐거움’ 이라는 큰 제목 아래 ‘서원을 걷다, 시를 쓰다.’ ‘잠깐 멈춤, 그리고 글쓰기’ ‘그림과 말 걸기, 글로 대화하기’ ‘이곡, 이색을 만나 대화하다’ 같은 매주 다른 주제로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서원이 주는 고즈넉한 우물 속에서 느림과 멈춤, 침묵의 두레박으로 아이들은 조금씩 생각을 퍼 올린다. 담지 않아도 엎질러지지 않는 생각들을 가슴에 품고 들어와 아이들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글을 쓴다. 다소 거칠고 어색한 표현이 눈에 띄지만 솔직한 글이 반갑기만 하다. 보이기를 꺼려하며 뒤로 숨기는 글이지만 안 읽어도 괜찮다.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예술이 문학이니 아이들 모두 예술가이고 문학가이다. 나 역시 아이들 덕분에 아침 햇빛을 안고 있는 소나무 숲을 오랫동안 바라볼 시간을 가졌고, 몇 백 년 전 이곳에서 책을 읽다 잠시 산책나온 그 누군가와 글을 쓰는 일의 외로움과 행복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3월이 오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공부와 시험, 경쟁과 같은 말들이 먼저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곧, 방학 동안의 이 짧았던 여유가 아주 먼 기억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 서있는 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서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도서관에 가서 낯선 시인의 시집을 용감하게 빌려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소중히 여기는 수첩에 또박또박 힘주어 마음에 남은 시를 옮겨 적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점심시간에 그 시를 비밀스럽게 들려주면 좋겠다. 문학이 그렇게 아이들에게 잠시 멈춤의 시간이 되어 삶의 힘이 되어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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