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와 언론의 역할
원전비리와 언론의 역할
  • 장호순 교수/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 승인 2013.06.10 16:21
  • 호수 6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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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독 무덥고 짜증스런 계절이 될 것 같다. 원자력 발전소 부품 납품과정에서 드러난 비리 때문이다. 주요 원자력 발전소가 부품교체를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여름철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갑자기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가능성이 높다. 매일 아침 살피던 날씨예보 대신 전력예보를 챙기는 것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원전부품 비리는 부정부패의 경제학을 아주 잘 입증하는 사례이다. 극소수 사람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국가사회 전체가 큰 불편과 손실을 입는 것이다. 원전부품 납품 과정에서 관련자들 사이에 오고간 수 백만원 혹은 수 천만원의 뇌물과 부당이익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감당해야할 재정적 손실은 최고 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언론계의 전망이다.


비판적 여론이 비등해지자 정부는 “철저한 수사”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고질적인 원전 납품비리가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원자력발전소는 물리적으로 외부인에게 개방이 어렵고, 전문가가 아니면 그 내용이나 과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원전 내부 이해 관계자들 간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납품비리를 외부인이 파악하고 지적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원전관련 비리가 해소되기 힘든 이유는 언론구조에도 있다. 부정부패에 관한 기사는 많지만, 그 사실을 언론이 직접 파헤친 경우는 드물다.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보도자료 배포를 기다리고 있다가 벌떼같이 달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일 뿐이다. 특히 지방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중앙언론의 감시망에 들어오기 더욱 힘들다. 우선 원전은 주요언론이 몰려있는 서울이 아니라 지방 해안지역에 배치되어 있다.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중앙언론이 취재기자를 보내는 지역이 아니다. 원전비리 검찰수사 이후 언론보도가 집중되었지만 원전에 직접 기자를 보내 상세하게 비리구조와 작업환경을 보도한 중앙언론사는 거의 없다.


중앙언론사들이 부패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돈 때문이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의 한 해 홍보예산은 평균 50억원에 달한다. 이중 상당액수가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 할당된다. 대한민국의 전력을 독점적 공급하고 있는 회사가 굳이 비용의 홍보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 라고 보기 어렵다. 방만한 공기업 경영과 인사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거나, 4대강 사업이나 핵폐기장 혹은 원전 증설에 반대하는 여론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재벌기업과 공기업의 신문이나 방송광고가 보험성이라는 것은 학계의 연구를 통해서 거듭 입증되었다.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광고효과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비리를 축소보도하거나 부정적 여론무마용으로 광고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원전 부품 비리 못지 않은 비리 사슬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22조원 넘게 국가예산을 투입한 소위 “4대강 사업”이다. 엄청난 국가예산이 사용되었지만, 언론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입장 편들기에 몰두했을 뿐, 사업시행과정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데에는 소홀했다. 4대강 사업 역시 중앙언론의 취재망이나 감시망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4대강 관련 예산낭비와 입찰비리를 수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부실공사로 인한 댐의 붕괴나 수로의 파괴 등 가시적인 부정부패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전까지 중앙언론은 그 부패고리를 파헤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감시와 고발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본연의 기능이다. 권력과 재벌의 비리가 만연해 있는 한국사회에서 언론은 그 기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언론이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다보니 지역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포착하고 고발할 수 있는 언론이 드물기 때문이다. 건강한 지역언론을 키워 지역에서 발생하는 부정과 비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부정부패의 척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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