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의 동일함
입장의 동일함
  • 양 선 숙 칼럼위원
  • 승인 2013.07.01 15:50
  • 호수 6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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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나는 정의감에 불타는 소녀였다. 2학년, 우리 교실은 별관 지하에 있어서 겨울에는 춥고 환기가 안 돼 쉬는 시간이면 햇볕을 좇아 옹기종기 모여 있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시간도 다를 바 없어 아이들은 창문에 걸터앉아 햇빛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매일 예닐곱 명이 돌아가며 청소당번을 맡았지만 막상 청소를 하는 아이들은 늘 두세 명에 불과했다. 청소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물걸레질은 생각도 못하고 빗자루로 대충 쓸고 책상 줄을 맞추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맡겨진 일을 미루는 청소당번들의 직무 태만에 화가 났고, 지하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를 다시 마셔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 마음 착한 반장의 권유도 이미 잊혀진 얘기였기에 내가 택한 방법은 나라도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1년 동안 매일 청소당번이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쓸고 닦고 책상 줄 맞추고, 거기에다 그날 청소당번이 누군가 외워 쫓아다니며 왜 놀고 있느냐며 오늘은 네가 청소당번이라며 온 교실을 종횡무진 쓸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들이 볼 때 얼마나 꼴 보기 싫고 재수 없는 아이였을까!


3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입시험을 한 달여 남긴 어느 날 자습시간에 오랜만에 선생님 인기투표를 하자는 반장의 제의에 모두들 좋아했다. 한 친구가 망을 보며 은밀히 인기투표는 진행되었다. 인기투표가 막바지에 이르러 칠판에 선생님들의 이름에 바를정(正) 자가 채워지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앞문이 열리며 노처녀 히스테리 충만한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망을 보다 한눈을 판 친구도, 앞에서 진행을 하던 친구도, 좋아라 킥킥대던 우리들도 모두 얼음이 되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깐깐하고 무서운 노처녀 선생님이었다. “때가 어느 때인데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들이 죽기 살기로 공부해도 시원찮을 판에 지금 이것이 무슨 짓이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시작한 일인지 따져 묻는 선생님의 추궁에 주도했던 반장은 무서웠는지 모른다며 부인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책상에 올라가 의자를 들고 눈을 감고 혼나야만 했다.
나는 “나 한 사람 희생하면 친구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삼십여 분의 정적을 깨고 ‘제가 그랬습니다’라며 용감하게 나섰다. 이후엔 교무실로 불려가 한참을 혼나고 석양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닌 것을 보면 불의를 느끼고 옳은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은 어른이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또래보다 일찍 시작한 직장생활과 결혼생활에 나와 가족만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국가와 사회는 피부로 닿지 않는 먼 얘기였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모든 일이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일임에도 그런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주제 넘는 일로 여겼다. 그러다 서천 지역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에서 오는 자괴감의 충돌은 나를 고민하게 했다.
그 즈음 지인으로부터  ‘나무야 나무야’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선물 받았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하다”는 글은 사고의 안일에 빠진 나를 질타하며 참여와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현충일과 한국전쟁이 담긴 6월도 며칠 안 남았다.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는 뉴스와 서천지역에서는 서천군의 일본 오사키시와의 자매결연을 반대하는 촛불이 밝혀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슴에 머무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변화하지 못한다. 지금은 함께 비를 맞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입장의 동일함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모두 참여하고 연대하여 사람 살만한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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