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의 산모롱가
이순의 산모롱가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3.07.08 14:24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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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그랬다.
이십대는 낭만주의 시대요, 삼사십대는 사실주의 시대요, 오륙십대는 휴머니즘 시대라고.
그렇다. 이십대엔 일도 사랑도 열정적이다. 삼사십대에는 일하느라 애 키우느라 앞만 보고 걷는다. 오륙십대 되어서야 아이들은 떠나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낭만주의 시대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사실주의 시대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부모에 대해 빚을 많이 지고 있다.
일용 근로자도 아닌 나에게 짐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돌아가신 분을 살려내는 이는 세상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였다. 시로 아버지, 어머니를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의 시를 쓰고 있다.

  이보다 더 먼 곳이 어디 있으랴
  영원으로 소멸해간 아픈 생각 하나
  이순의 산모롱가에 하현달로 뜨는구나
                         -「어머니 22」

시보다 먼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단어를 고르고 배치하고 생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결코 혼자 되는 일이 아니다. 간절하고 간절해야한다. 그러면 신은 겨우 머리카락 반 올만 보여주신다.
희미한 불빛은 바람이 가져갔고, 긴 그림자는 봄비가 가져갔다. 그리고 핏빛 눈물은 노을이 가져갔다. 영원한 빈칸이 되었으니 어찌 선계의 불사약을 훔쳐올 수 있단 말인가.
아픈 생각들, 그 마지막 하나도 이제는 영원으로 소멸해갔다. 소멸해간 것은 찾을 수도 없고 가져올 수는 더욱 없다.
“친구, 언제 만나 우리 한 잔 하이.”
그러면 몇 년이 훌쩍 가버린다. 어쩌다 만나면 주름살이 더 늘었고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래도 젊어졌다고 하면 ‘정말?’ 하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어느덧 나도 이순의 중반에 접어들었다. 어쩌다 밤하늘을 처다보면 하현달이 떠있다. 어제가 보름인 것 같은데 벌써 하현달이다.

  뚜욱 뚜욱 빗방울 소리인 줄 알았는데
  우우우우 바람 소리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크게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 바람 소리
                            -「어머니 45」

그렇다.
갈수록 ‘뚜욱뚜욱’ 빗방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다. ‘우우우우’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다. 
「어머니」의 짐을 다 부리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신선 같은 빗방울 소리,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빗방울 소리, 바람 소리는 그래도 남지 않겠는가. 남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내를 위해 두고 두고 쓰리라. 

<중부대 교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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