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 개편과 지방대학의 위기
대입제도 개편과 지방대학의 위기
  • 장 호 순 교수/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 승인 2013.09.06 12:34
  • 호수 6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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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대입제도를 다시 바꾸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걱정과 분노, 탄식과 체념이 여름날 한줄기 소나기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교육부 발표 당시엔 비판여론이 비등하지만, 오래가진 않고 잠잠해진다. 학부모나 교사들은 새로운 제도에 맞추어 학생들을 준비시키느라 다시 분주해진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당황하고 방황하는 사이, 대입 사설학원들은 재빨리 새로운 입시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낼 것이다.


대입제도를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소동은 그릇된 진단과 처방에 기인한다. 대입제도의 문제는 한국대학의 구조적 격차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원인은 모른 척하고 대입제도만 뜯어 고치려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의 격차이다. 지방대학의 여건이 부실하고 사회적 편견이 강고하다보니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가급적 지방대학을 피하려 든다. 그래서 지금의 대입경쟁은 일류대를 위한 경쟁 보다는 소위 "인 서울(in Seoul)"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다. 지방 고교생들은 대학을 통해 서울권 진입을 꿈꾸고, 서울 학생들은 지방대학으로 밀려나지 않기위해 분투한다.


대학 간의 격차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소위 일류대, 이류대, 삼류대의 구분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우수 명문대학들이 특정 지역에, 그것도 국가 수도에 집중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선진국에도 소위 명문 일류대가 있지만, 대부분 각 지방에 분산되어 있어, 고교생들은 웬만큼 공부하면 자기 지방의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해방 후 한국사회는 일제 식민지시대 정착된 수도권 위주의 대학 구조와 서열문화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원(書院)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교육문화도, 서구의 지방분산 대학체계도 모두 발붙이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지방대학에 대한 육성과 지원 정책이 지방분권 차원에서 도입되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세계적 대학을 육성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수도권 일류대학 중심의 정책적 지원으로 선회했고, 지방의 국립대학이나 전통있는 사립대학은 우수한 교수나 학생을 확보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한편 정치권의 로비와 정부의 묵인 하에 신생 부실 지방사립대가 늘어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지방대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 선택이 되었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순서대로 지방대의 위기가 닥치기 시작했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2018년부터 본격화 될 것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출산율이 줄어든 탓에 이때부터 대입 수험생의 숫자가 대학입학정원의 80% 이하로 줄어든다. 결국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기피하는 지방대학부터 정원미달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역사회의 위기로 이어진다. 경제적 위축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충격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사회의 창조적 에너지원과 정신문화적 구심점이 사라지게 된다. 지금보다 더욱 지적으로 무기력하고 황폐한 지역사회가 될 것이다. 지방대학이 부실한 상태에서는 지방분권도 지방자치도 동반 부실해 질 수밖에 없다.


지방 학부모들이 자녀를 수도권대학에 보내려면 경제적으로 상당한 추가부담을 해야 한다. 그래도 지금까진 수도권 대학에 자녀를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실리적인 결정이었다. 소위 “인 서울” 대학 졸업장의 가치가 지방대학 졸업장의 가치보다 높게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비용대비 효과가 낮아지고 있다. 학업에 투자할 시간과 비용 면에서 지방출신 학생은 수도권 학생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하고 경쟁력있는 지방대학, 지방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지방대학의 육성이 대한민국 교육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다. 지방대학이 선호되는 나라가 되어야 학생들도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고, 학부모들도 사교육부담에서 해방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가 쉽지는 않다.


지방사람들과 지방대학사람들이 나서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서울에서 살고 서울소재 대학 학부모인 교육부 관리들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그럴려면 대학관련 정부업무를 하루라도 빨리 지방으로 이관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고급인재를 지방대학에서 양성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소동도 자동적 사그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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