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변신은 무죄
그 남자의 변신은 무죄
  • 최현옥
  • 승인 2003.03.20 00:00
  • 호수 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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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의 마술사에서 건축전문인으로 거듭난 그의 인생극장
그에게 춤과 음악은 마약과도 같았다. 한번 빠진 춤의 세계는 그를 건축업자에서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탈바꿈 시켰고 단순히 춤과 음악이 좋아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춤쟁이’로 비하했다.
오랫동안 바다 속에 담가 두었던 투망을 건져 가득 찼던 물을 떠나 보낸 그, 이제 그의 가슴에는 펄떡이는 물고기가 교훈으로 남아있다.
건축 자재를 취급하는 한일건재를 운영하는 한광수(49·장항읍 창선리)씨는 전기, 미장, 목수, 수도·보일러 놓기 등 지역에서 건축부문 수준급 기술을 자랑한다. 2백50평 규모로 중장비까지 갖추고 보수공사와 조립식 건축을 담당하는 그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책임의식이 투철해 일을 맡겼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또 한번 건축·보수를 맡겼던 사람들은 그에게 지속적으로 건축을 맡기고 있으며 건축에 대한 문의전화가 쇄도한다.
“사람과 물건은 어느 곳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하잖아요. 과거야 어떻든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보수공사를 하는 한씨에게선 과거 춤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공사판 일로 거칠어진 손, 그는 분명 기술자였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이라는 것을 운영했다”는 한씨는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부터 기술을 익히고 싶은 마음에 학업을 포기하고 건축에 입문했다.
무엇이든 배우기 시작하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만 만족했던 그는 욕심도 많고 손재주가 뛰어나 목수 일부터 철재, 미장 등 건축 관련 일을 빠르게 습득하며 19살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공업사 운영을 시작했다.
착실하게 건축사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건축자재를 배달하며 하체운동 삼아 사교춤을 배웠으며 1년 6개월 동안 탱고, 브르스, 왈츠 등 사교춤의 모든 것을 섭렵했다. 그 후 그를 사로잡은 건 춤과 음악이 공존하는 공간인 나이트 클럽이었다.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춤과 음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는 기대로 그의 나이 35살에 클럽을 운영했다. 클럽은 하루 매상이 3백만원에 가까울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불행은 일찍 찾아왔고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다 15년 간의 긴 여정의 막을 내렸다.
“15년 간의 방황이 후회되지는 않는다”는 한씨는 이제 과거를 교훈 삼아 미래 설계에 여념이 없다. 즉 지역에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 한국화랑청소년육성회 충남지부장 양철형씨와 인연을 맺으며 서천음악동호회 회원으로 가입, 자신의 춤과 음악실력을 지역 곳곳에 선보이고 있다.
현재 스포츠댄스로 자리잡은 사교춤은 과거 편견과 비화로 얼룩져 있었지만 사실 자세교정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에 한씨는 노인들에게 음악과 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 노인대학을 찾을 예정이다.
“과거 클럽을 운영하며 경로잔치에 찾아 무료연주를 했지만 사람들의 편견으로 떳떳하지 못했다”는 그는 “이제는 자신이 갖은 끼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또 서천보건소의 요청에 의해 진행되는 정신자가환자 대상 음악치료에서 연주와 춤을 선보이며 자신에게 따라붙던 ‘춤쟁이’라는 사람들의 편견만큼 자신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깊었던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장애인들과 동화되면서 사랑 실천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게 된다”는 그는 자신의 집을 개조하여 음악치료장소로 활용할 것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연주를 안 하면서 손이 굳어져 현재 연주 연습 중 이다”는 한씨는 건축업에서 최고 자리에 설 것을 다짐하며 입에 쓴 독초를 약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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