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열공 중
어머니는 열공 중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3.10.07 13:59
  • 호수 6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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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큰 딸과 시댁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앞뒤 문 열어놓고 선풍기로 더위를 쫓으며 어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모시를 삼고 계셨다. 외국 가서 공부한다고 1년간 못 봤던, 어머니가 기저귀 갈아 키운 손녀딸을 새하얀 머리로 환하게 반기신다. 시골집은 늘 똑같다.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가 담장에 그림자를 길게 널어두고 어머니는 짼 모시를 쩐지에 걸어놓고 한 올씩 빼어 무릎위에서 한 번, 손바닥으로 한 번 비비며 모시를 삼고 계셨다. 달라져 보일 것 없는 시골집의 풍경 속에서 큰 딸이 보물을 찾아냈다. 할머니 가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국어책과 공책을 끄집어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할머니 한글 공부하세요?”
부엌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챙기던 어머니가 겸연쩍게 “응, 공부혀~”라며 짧은 대답을 보낸다. 교과서와 그림 공책을 펼쳐보니, 어머니의 숨겨진 세상이 새색시 자태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한 자 한 자 어찌나 차분하고 정성스럽던지 글공부를 향한 어머니의 진심이 어려 있었다.
“어머니, 어쩜 이렇게 글씨를 잘 쓰세요!”
부끄러운지 피식 웃기만 하시는 어머니가 귀여워보였다.


아들이 어려서 어머니에게 “가나다라”를 가르쳐 드렸는데 논밭에 널려진 일 때문에 끝을 맺지 못했고, 교회 다니면서 글씨를 깨치신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며 결혼 초기에 남편이 귀띔해 주었다. 시골 아낙네가 글 쓸 일이 어디 흔하겠냐만 우리 집은 제사 대신 기독교식으로 추모식을 갖고 모일 때마다 성경과 찬송을 부르곤 한다. 막힘없이 찬송을 부르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알고 부르시는 건지, 외워서 부르시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겠지만 팔순을 두해 남겨놓고 어엿한 학생이 되셨다. 자식 가르치느라 거칠고 둔해진 손으로 평생 잡아보지 않던 연필로 한글 공부를 하신다. 이제는 버스기사에게 묻지 않고도 버스를 타고, 상점 간판도 척척 읽으시며, 감사헌금 봉투에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과 기도제목도 쓰시겠지. 몰라서 답답하고 결국은 포기했던 세상이 환해지고 묶였던 실타래가 풀리 듯 속까지 시원해지실 게다.


나는 직업상 어르신들을 많이 만난다. 남편의 서너 차례 허리, 다리 수술로 뒷바라지에 바쁜 김 할머니가 속 얘기를 꺼내셨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어깨너머로 한글을 배워 간신히 읽기는 하는데 쓸 줄을 모른다며 이제라도 한글을 배우고 싶으시단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에 문의를 하여 김 할머니 사시는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는 한글반을 소개시켜드렸다.


추석 명절이 되어 인사차 오랜만에 김 할머니 댁에 들렸다. 젊은이도 탐나는 리본 달린 가방에서 봄부터 공부한 공책과 국어교과서를 펼쳐 보이며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학교 갔다 오면 그날 배운 것을 공책에 또박또박 몇 번을 쓰고 내일 배울 것도 읽어 가니 받아쓰기를 백점 맞는다며 얼굴까지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요즘은 수학도 배우는데 두 자리 덧셈은 헷갈린다는 만학도의 즐거운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天(하늘천), 地(따지), 玄(검을 현), 黃(누를 황)…”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가 어깨를 흔들며 외쳤던 소리보다 더 크게 “가나다라마사…” 동네마다 할머니들의 즐거운 외침이 들려온다. 여자라서, 가난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공부를 언제 돌아가야 할 지 모르는 황혼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글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을 가엽이 여겨 만든 것이 한글이니 육백년이 흐른 지금에도 세종대왕이 무덤에서 미소 지을 일이다.


이 땅의 할머니들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글공부에 도전하고 계심에 그분의 아들과 딸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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