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국
산 국
  • 신 웅 순 칼럼위원
  • 승인 2013.10.12 13:05
  • 호수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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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웅 순 칼럼위원

들국화가 어떤 꽃인지 몰랐다. 쑥부쟁이가 들국화인 줄로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 산국, 구절초, 감국, 쑥부쟁이를 통틀어 들국화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반세기를 훌쩍 넘었어도 흔한 들꽃 이름 하나 알지 못하다니 꽃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해마다 무량의 기쁨을 주었건만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러주지 못했다. 참으로 나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비난이라도 했더라면 죄는 가벼워졌을 것이다.


  산에 지천으로 피고 졌던 가을 산꽃.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던, 초가을 산그늘 아래 미소 짓던 노란 산꽃. 아낌없이 주는 외경스러운 이 산국을, 해마다 아름다운 선물을 주는 이 산국을 누가 개국화라 했는가.

      산국이 피었고
      산국이 지었다는 말을

      눈 오는 날
      까치밥 나무 열매한테서 들었습니다.
                -필자의 「산국1」전문

  산국이 좋았다. 산에 가면 노랗게 핀 서늘한 산국이 좋았다. 빨간 마른 까치밥 나무 열매 사이로 피어있는 마른 산국이 좋았다.
  눈이 오는 날 산에 가보아야겠다. 눈에 덮힌 빨간 까치밥 나무 열매를 보러 가야겠다. 그 열매가 내게 산국이 언제 피었고 언제 졌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찬바람이 언제 불어왔는지 가을비가 언제 내렸는지도 알려줄 것이다. 봄비가 내리는 날도 알려 줄 것이다. 산국과 함께 살았으니 산속의 비밀과 이치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이 아닌가. 

      새 소리 때문에 산국이 지천으로 핍니다.
      물소리 때문에 산국이 지천으로 집니다.

      그렇게
      산국은 울음이 많습니다.
                        -필자의 「산국 2」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다하지 않았는가. 새소리, 물소리 때문에 산국이 피고 진다니 울음이 많지 않다면 피고 지기까지 하겠는가. 
  그 동안 흘렸던 내 눈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가벼울까 무거울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벽 몇 시간을 실컷 운 것이 내 울음의 마지막이었다. 울컥해서 흘린 눈물, 찔끔 찔끔 흘린 눈물들은 지금쯤 다 말라 바스라졌을 것이다.
  그 동안 이름을 몰라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던 산국.


  나는 산국의 이름을 아는데 갑년이나 걸렸다. 기막힌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요 무심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무슨 많은 세월들이 산국의 이름을 절로 알게 했는가.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무엇으로 산국에게 보답을 할까. 눈 오는 날 빨간 까치밥나무 열매한테 물어보아야겠다.


  딸이 결혼할 때 사위될 사람한테 산국을 아느냐고 물어보아야겠다. 꽃과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퇴자를 놓아야겠다. 산국을 모르는 사람과는 술 한 잔도 하지 말아야겠다.
  내 고향 뒷동산 산국은 나를 반갑게 맞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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