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천의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 이정아 칼럼위원
  • 승인 2013.10.28 14:34
  • 호수 6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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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르른 나무의 거울은 새의 노래 \ 노래의 거울은  눈부신 햇살 \ 햇살의 거울은 맑은 이슬 \ 이슬의 거울은  파란 하늘 \ 하늘의  거울은  동그래진  나의 눈
(신형건의  ‘아침 노래’)


 얘들아, 난 오늘 아침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보며 이 시를 떠올렸단다. 그 작은 방울이 무지개를 안고 있더구나. 온 우주를 품고 있더구나. 하지만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어. 오히려 거뜬하고 활기차보였지. 그리고 나도 저 이슬방울처럼 가벼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단다. 저 찬란한 햇살 속으로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던, 온 몸을 둥글려서 세상을 간절히 비춰보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음을.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구나. 어른들 말로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눈물짓던 시기였다지만 내겐 집에 오는 길, 친구들과 배가 아프도록 웃고 떠들던 기억이 더 많으니 아마 그 시절부터 부모님과 다른 시간을 살기 시작했던 모양이야.


 내가 다니던 중학교 앞에는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쓰다 만 노트를 가져가면 아저씨가 솜씨 좋게 연습장으로 만들어주곤 했어. 그리고 서비스로 연습장 맨 앞엔 시를 한 편씩 크게 써서 넣어주었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린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가에 앉아 그 시를 외웠단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 그냥 좋아서 한 일이었단다. 그리고 그 때 외운 시들은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서 불현듯 떠오르곤 해. 가끔 한 두 구절 떠오르지 않을 땐 지나간 세월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리고 이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서점 아저씨가 고맙고 그리워져.


 얘들아, 지금 너희들 마음을 움직이는 건 뭐니? 어떤 일들이 시키지 않아도 그냥 하고 싶어서 저절로 되고 있니? 잘 모르겠다고? 그럼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봐. 분명히 있을 거야. 나를 즐겁고 힘나게 하는 일이. 그리고 그 일을 하고 나면 기분 좋은 느낌으로 꽉 채워지는 일이 있을 거야. 바로 그 일, 그 마음을 찾아야 된단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 일이 앞으로 너희들의 삶을 이끄는 길이 될 테니까.


  나는 얼마 전 너희들과 특별한 경험을 했단다. 학교 밖에서 꾸려진 독서 동아리 친구들과 부여에 있는 ‘신동엽 문학관’에 다녀왔어. 너희들은 그곳에 가기 전에 미리 시인의 시를 읽고 삶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지. 문학관에 도착해 ‘껍데기는 가라’를 조심스레 읽어가는  너희들의 얼굴과 음성에서 나는 나무의 푸르름을 보았단다. 점심을 먹고 문학관을 둘러본 후 북카페에 모여 글을 썼지. 관람객들로 소란했지만 펜을 쥔 너희들의 모습은 진지하기만 했어.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질문을 받고, 답을 해줄 땐 또 얼마나 예쁘던지...  강요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희들은 무척 자유로워보였단다. 자신만의 이슬을 발견하고 눈이 동그래진 것처럼.

 또 한 번의 경험은 지난주에 있었어. 청소년문화센터 꿈해랑 친구들과 아산에 가서 인형극 ‘우리는 친구’를 공연 한 거야. 몇 달 동안 너희들이 직접 글을 쓰고 인형을 만들고 연기를 연습했지. 그리고 드디어 다른 지역에서 온 청소년들과 함께 공연을 했단다. 아마 제일 먼저 해야 해서 좀 더 긴장했을 거야. 까만 옷을 입고 각자 자기가 만든 인형을 들고 연기하는 모습을 나는 2층 조명실에서 봤단다. 무대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순서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너희들이 다 보였어. 시작 음악이 흐르고 무대 위로 풀쩍 튀어나오는 인형들, 그리고 그 인형을 움직이는 너희들 모두 자랑스러웠단다. 모르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너희들의 빨간 얼굴이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문득, 나도 너희들의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부러웠어.


 얘들아, 너희들 앞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있단다. 발은 너희들을 어느 한 길로 안내하겠지만 그 발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라는 거 알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지금 이 시기에 너희들이 겪는 혼란과 고민, 다양한 경험이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할 거야.
조금 먼 길을 친구와 이야기하며 걸어보거나 자전거를 타고 낯선 길까지 달려보렴. 책꽂이에서 용감하게 두꺼운 책을 뽑아보기도 하고 친구와 땀 흘리며 운동도 해 보렴.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를 조용히 고민해 보렴.


그럼 나를 움직이는 마음이 보이게 될 거야.  얘들아, 세상을 향해 동그랗게 뜨는 너희들의 두 눈에 우주가 담긴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아라. 나무와 새의 노래, 햇살과 이슬, 그리고 하늘을 두 눈 안에 채우길 빈다.
너희들의 시간은 참으로 아름답단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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