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억 속에 있는 미래
우리 기억 속에 있는 미래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3.11.04 13:57
  • 호수 6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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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계에 3대 거짓말이란 게 있다.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거짓말, 노인이 죽고 싶다는 거짓말, 상인이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 이 3대 거짓말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정된다. 오죽하면 5천년 전 이솝 우화에도 나온다.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각기 다른 재능을 나누어줄 때, 장사를 하느라 맨 마지막에야 찾아온 상인에게 마지막 남은 거짓말의 재능을 나누어주었다고.


그래선지 사람들은 상인들이 장사를 해도 남는 게 없다고 거짓말을 해도 거기에 크게 분개하지는 않는다. 으레 그러려니 봐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물론 가짜 물건을 진짜로 속이거나, 먹고 죽을 수도 있는 횟가루를 두부에 넣거나, 중국산을 국내산이라 속이거나, 미국 소를 한우라 속여 파는 것은 죄악이다. 성실한 농민이나 상인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스름돈을 속여 내주는 것도 죄악이다. 아마 하느님도 그런 거짓말까지 허용한 것은 맹세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정도의 거짓말을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요즘 웬만한 자영업자들에게 ‘죽어라 해도 적자’라는 말은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다. 장사를 계속해도 남는 게 없고,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어 겨우겨우 사업을 유지한다는 게 엄살 아닌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견기업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정부기관 통계에서 분명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10월에 발표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중산층의 가계는 빚 부담이 크게 늘어 지난 봄(3월) 기준으로 금융부채만 450조원 내외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80조 가량은 언제 부실화될지 모르는, 다시 말해서 갚을 능력이 없어 부도를 낼지 모르는 악성부채다. 중산층 서민들이 은행에서 빌린 돈이 500조원이라면, 그 가운데 100조원이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채와 간접적인 부채를 고려하면 부채 규모는 거의 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정부나 금융기관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2000년대 초반 수많은 파산자와 노숙자를 양산했던 가계 부도사태의 악몽이 떠오른다.
당시 거리에는 회사에서 밀려난 퇴직자들과 빚에 몰려 가게를 접고 막노동을 찾아 나선 자영업자들이 넘쳐났다. 밤이면 서울의 지하도와 공원 공공건물 주변마다 골판지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누운 노숙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들 대다수가 경제적 위험에 내몰린 것은 몇 년을 더 거슬러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시기에서 비롯됐다. 경제가 어려워 빚을 내서 쓰기 시작했고,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 여러 개를 가지고 일명 ‘돌려막기’로 몇 달을 버티다가 한계에 부닥치자 집을 줄이고 사업 장비까지 팔았다. 경기가 안 좋으니 그것조차 제값을 받지 못했다. 결국은 모아둔 재산을 헐값에 팔아치우거나 강제 경매를 당하면서 하나 둘 거리로 밀려났던 것이다.


지금 중산층 이하 국민의 경제상황은 과거의 악몽을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보인다. 부채가 있는 저소득층은 100만원을 벌 때마다 32만원을 이자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인위적인 금리억제 정책으로 어떻게든 중산층의 몰락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듯하다. 하지만 금리나 환율은 국제시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버틸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서민경제의 위기와 중산층의 위기(몰락을 거의 눈앞에 둔) 원인을 따져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경상수지의 위기는 서민 중산층 자영업자를 넘어 이제 어지간한 기업들에게도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재벌이라 불리는 10대기업 이내의 기업집단들만 순이익이 증가했다고 한다. 빈부격차가 매우 심화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기가 왜 왔느냐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서민과 중산층 입장에서 이미 늦은 일이다. 대기업 중요한 줄만 알고 서민과 중산층의 삶에 무심했던 지난 정권에게 책임을 물은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 되돌려질 수도 없다. 유일한 심판 수단인 선거의 기회도 이미 지나갔다.


어찌할 것인가. 답은 항시 지나간 시간 속에 있다. 멀리 지난 역사까지 갈 것도 없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속에 지금과 아주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IMF 구제금융 시기 전후에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해서 유난히 더 어려웠고 어떤 사람은 어떻게 해서 오히려 호기를 맞았던가. 기억을 추슬러 볼 필요가 있다.
<시인·칼럼니스트/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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