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아름다움
느림의 아름다움
  • 장인식 칼럼위원
  • 승인 2013.11.11 15:16
  • 호수 68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세기까지가 자유를 위한 시대였다면 20세기는 평등을 위한 시대, 21세기는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로서 스스로의 개선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의 충분한 만족과 기쁨으로 느끼는 흐믓한 행복(幸福)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흔히들 물질과 건강, 사랑과 희망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중에, 우연히 몇 개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행복이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 갖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서 행복을 시와 노래, 심지어는 구호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번 제18대 대통령(제6공화국의 여섯 번째 정부)도 일자리와 교육, 안전과 사회통합이 국민행복이라 여기고 있는 듯싶다.
점차 나의 행복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던 날에 나는 유사한 답을 찾았다.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바로 내 주위모습들 이었다.

생존의 몸부림들. 동시에 버스를 내려 걸어가면서 보았던 많은 풍광들과 그 속에서의 수많은 움직임들. 자가용을 타고 이십여 년을 휙휙 지나쳐버렸던 주위의 모습들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생활 터가 도시지역이라 그렇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시골지역이었더라면 더욱 더 감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늦지 않으려고 모두 택시를 타고 와서인지 입구가 매우 분주해 보였다. 그래서 또 생각은 이어져 갔다. 바로 우리가 왜 택시를 타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급할 때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지리를 잘 모를 때와 짐이 많을 때도 그러하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몸에 밴 경우도 있을 듯싶다. 조금만 서두르거나 미리 미리 알아본다면 다른 방편도 많을 터인데 그저 귀찮아서 남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았다. 승객은 급하다는데 길은 꽉 막혀 있다. 게다가 이어폰 끼고 무단으로 길을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 경적 울림조차도 무시하고 있다. 이렇게 운전으로 생계 잇기도 바쁜데 친절하게 억지웃음을 지어보려 노력한다.


그렇구나. 바로 이런 것이 바로 삶이구나. 주체와 객체, 매체로서의 역할이 서로 바뀌어가며 만들어 내는 것들. 또한 그 속에서 발견되는 여유(餘裕)와 안전(安全). 바로 이런 것들이 행복의 원동력이 아닌가? 거기엔 빠름보단 느림이 숨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송정보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