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의 차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
  • 장호순 교수/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 승인 2013.11.11 15:17
  • 호수 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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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과거사 문제로 한일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으레 국내 언론들은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 보도한다. 양국 모두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반인류적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에 대한 태도가 무척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은 철저하게 나치시절의 잘못을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적, 사회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일본은 군국주의 시절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정치인들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은 과거만행을 묵인하고 부인하는 아베 정권이 매우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독일과 일본이 2차대전 과거사에 대해 사뭇 다른 태도를 취할까?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전후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설정된 국가와 지역 간의 관계이다. 독일은 나치 국가주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연방정부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통치권을 지방정부인 주정부에 맡겼다. 반면 일본은 지역 간의 권력분산 대신 수도인 동경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체제를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가 힘을 얻지 못하지만,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망령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가 언론이다. 독일은 철저하게 지역언론 중심인 반면, 일본에서는 도쿄의 언론이 전국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구조적인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쌍둥이나 다름없다. 일본인들이 시청하는 방송이나 구독하는 신문의 대부분은 도쿄에서 만든 것들이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수도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일본 전역에 배포된다. 지역방송의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도쿄에 본부를 둔 NHK와 5개의 민간방송 키스테이션(Key Station)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이다. 일본의 이러한 전국적 언론구조는 국수주의나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우익들에게는 매우 효율적인 선동수단이 되고 있다.

반면 독일은 전국언론이 거의 없다. 독일인들이 구독하는 대부분의 신문은 지역신문이다.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유일한 신문인 <Bild>는 한국의 지하철 가판대에 팔리는 주간지 수준의 선정적 신문이다. 독일에는 방송도 철저하게 지역방송이다. 각 주마다 자체의 지역공영방송이 있고, 독일 전역으로 방송되는 공영방송도 주정부의 관할이다. 제1 공영방송인 ARD는 지역공영방송이 연합해서 운영하고, 제2공영방송인 ZDF는 각 주정부가 연합해서 운영한다.


독일이 언론구조를 철저하게 지역언론 중심으로 구축한 이유는 2차 대전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나치의 집권을 가능하게 하고, 나치 지도자 히틀러가 독일인들에 반인류적 만행과 전쟁에 참여하도록 만든 수단이 바로 언론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퇴역사병이었던 히틀러가 독일의 절대적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당시 독일의 라디오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달변가이자 선동가였던 히틀러는 전국에 동시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통해 게르만민족의 우월성과 단결을 호소했고, 1차 대전 패전으로 고통받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후 독일을 점령한 미국은 독일의 국가주의 부활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지역정부 위주로 정치구조를 재편했는데, 자연스럽게 언론도 역시 지역언론이 주축이 되었다.


세계 어디서나 전국단위 언론은 자연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강조한다. 자연 이웃나라와의 동질성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하고, 은근히 국가 간 마찰을 부추킨다. 그래야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신문이 팔리고 시청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몇 안되는 전국단위 신문들, 즉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일본의 보수우익 일간지, 중국의 상업적 전국일간지, 한국의 보수일간지 모두 그런 면에서 동일하다.


국가 간 우호관계 유지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지역언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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