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전엔 쌀 한 가마니 900원?
54년 전엔 쌀 한 가마니 900원?
  • 최정임 기자
  • 승인 2013.11.11 17:08
  • 호수 6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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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땐 8만4000원, 2002 월드컵 땐 15만3000원
쌀값 궁금하면 강영순 할아버지에게
▲ 54년째 쌀 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강영순씨.

사람들은 흔히들 “짜장면이 600원 할 때 내가 어쩌고 저쩌고…”, “그 때 내 한 달 월급이 23만원이었는데…”라고 말하며 오래 전 경제상황에 대해 기억 속을 더듬곤 한다. 예로부터 쌀이 주식인 한국인들에게 무엇보다 쌀값의 변동은 생계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쌀 가격을 지난 54년간 꾸준히 기록해온 이가 있다.


서천읍 신송리에 살고 있는 강영순 할아버지(84)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바로 서천의 쌀값을 서천장날을 기준으로 1959년부터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의 손때가 묻고 빛바랜 노트의 표지에는 ‘서천(舒川) 미가통계표(米價統計表)라고 적혀 있었다.
그 표지를 넘기면 1959년부터 1월 2일부터 매달 2일과 7일, 12일과 17일, 22일과 27일의 서천장날 쌀 가격이 찾아보기 쉽게 표로 기록돼 있었다.


▲ 강영순씨의 서천 미가통계표 노트.
그 해 가장 쌀값이 가장 쌌을 때는 11월 22일으로 한 가마니에 850원이었다. 가장 쌀 시세가 높았을 때는 5월 17일으로 1320원이었다. 쌀 한가마니, 그러니까 쌀 80㎏이 850원이었다니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 엄청난 경제성장을 하고 그만큼 물가변동의 폭이 컸음을 듣고 배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해도 그저 놀랍다.
1959년 이후 우리나라 역사상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당시의 쌀 가격은 얼마였을 지를 찾아보며 당시의 물가변동을 유추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다.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다음날인 1961년 5월 17일 서천의 쌀값은 1820원. 1979년 10.26사태 다음날인 27일엔 쌀 한 가마니 값이 38000원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땐 8만4000원 정도였고 2002년 월드컵때는 15만2000원으로 기록됐다. 2003년엔 15만원대였던 쌀값이 올해 11월엔 19만원대로 10년간 4만원 가량 올랐다. 뉴스서천 창간일(1999년 10월 11일) 다음날인 12일에는 쌀 한 가마니에 16만2000원이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의 쌀값을 찾아보는 재미는 시간가는 것도 잊을 만큼 쏠쏠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했다.


강영순 할아버지가 장항농고를 졸업하고 군 생활을 하던 중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쌀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쌀 시세를 적어놓은 기록이 수십 년 간 쌓여 이제는 잘 보존해야할 지역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
벽에 붙여놓은 세계지도에 딸들이 보내준 8곳의 해외여행지가 표시돼 있는 강영순 할아버지의 방에는 그에게 중요했던 순간들, 그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이 빈틈없이 걸려있다.


강영순 할아버지는 쌀 값 말고도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들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요즘은 함께 하던 아내가 치매에 걸려 논산의 한 요양원에 입원하면서 혼자 하는 시간이 많아진 후 배우기 시작한 붓글씨 쓰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는 그는 “쌀값을 계속 기록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수십 년간 해오던 것을 그만두면 그동안의 기록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 계속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기록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서천 미가통계표’는 강영순 할아버지 뿐 아니리 지역주민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부디 잘 보존되기를…       

▲ 강영순씨의 노트 안에는 1959년부터 서천 장날마다 쌀 가격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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