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내시라, 전교조
힘 내시라, 전교조
  • 심 재 옥 칼럼위원
  • 승인 2013.11.18 15:05
  • 호수 6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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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4년도에 서천여고를 졸업했다. 전교조가 결성된 89년 이전에 졸업했으니 소위 말하는 전교조 세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3 때 국어 선생님을 통해 전교조의 활동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 있다. 국어 선생님은 처음 부임해 오실 때 총각 선생님이셨다. 호기심 가득하던 여고생들의 눈빛을 받아치지 못해 교탁과 교실 뒷벽만 바라보며 수업을 하셨다.
시커먼 얼굴에 뽀글머리의 선생님은 촌스러웠으나 울림 큰 목소리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 선생님이 읽어주는 시들, 고전문학들, 세상 이야기들에 빠져 국어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유독 집중력을 발휘하는 내가 나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한시며, 현대시들을 달달 외우기도 했고, 문학반에 들어가 “토방문학”이라는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우리말로 된 동네 상가 이름을 수집해서 “까꼬보꼬”라는 미용실에 대상을 주기도 했고 학교를 오가는 양쪽의 언덕길에 어울렁길, 더울렁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자서전을 쓰라는 숙제에 글을 쓰다가 우리 엄마의 가난하고 신산한 삶이 가슴에 사무쳐 눈물을 쏟아 냈던 기억도 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국어 선생님을 만나고 졸업할 수 있어서 난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교과서 말고도 나를 돌아보고 내 주변의 동네와 사람, 세상과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가르침을 받아 본 것은 12년 학교생활을 통털어 그 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내가 졸업한 한참 뒤인 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국의 1600명에 달하는 선생님들이 해직될 때 국어 선생님도 교단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
교사가 노동자냐’는 논란과 함께 선생님들을 마치 범죄자 취급하는 세상의 비난과 조롱에 나는 속이 상했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공부했던 그 시절, 선생님 교육과 나의 학교생활이 송두리째 부정되고 조롱당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었다.  


최근 언론에 떠돌고 있는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문서를 본 적이 있다. 89년도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에 전교조 교사를 적발해서 조치를 취하라고 내려 보낸 공문인데, 이 문서에는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면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 ‘사고친 학생들의 정학이나 퇴학을 반대하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반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자기자리 청소 잘하는 교사’ ‘학부모 상담을 자주하는 교사’…
정말 좋은 선생님 식별법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이런 선생님들만 있다면 아무 걱정도 불만도 없을 터이다. 


이렇게 좋은 선생님 1600명을 교육부가 해고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사랑과 학부모들의 신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개인을 넘어 조직을 만들고 불합리한 학교의 여러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촌지 없는 학교, 강제 야자와 우열반 편성 없애기, 뿌리깊은 사학비리 근절을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 혁신학교 만들기 등 전교조 창립 25년 동안 학교는 많이 변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난 때문에 차별받아야 했던 촌지 문화를 근절시킨 것 하나만으로도 전교조 선생님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창립 초기부터 정권의 끊임없는 탄압에 시달려왔던 전교조가, 최근에는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을 통보받았다.
실업자와 해고자는 초기업단위 노조의 조합원으로 인정되어 왔고, 조합원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노동조합 고유의 판단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당연히 전교조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 이전에 행정법원에서 정부 조치의 효력을 정지시킨 가처분 결정은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당연한 결정으로 환영할 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사면초가에 몰려 정치공세를 펼치는 정부와 사람과 세상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가르치는 전교조 선생님, 둘 중 누가 더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의 미래와 행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쪽이 당연히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힘내시라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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