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도시’는 그냥 생기지 않았다
‘태양의 도시’는 그냥 생기지 않았다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3.12.21 11:26
  • 호수 6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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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서 소개하고 박용남 선생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가 출간되면서 차차 늘어난 한국 방문객들이 요즘은 리오 카니발 기간이 부쩍 찾아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데, 교통을 혁신하고 시민참여로 재활용으로 도시의 가치를 높인 브라질 꾸리찌바는 한국인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도시 중의 하나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다.


독일 남부의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핵발전소 반대투쟁에서 시민들이 크게 각성하게 되었다. 햇빛이 강하지 않고 흐린 날이 많은 유럽이지만 독일에서 비교적 햇살이 강한 프라이부르크에서 핵발전소를 대신할 전기의 자원을 찾았고 결국 태양과 바람, 그리고 정원 폐기물과 축산분뇨들로 에너지를 자급하는 마을이 여기저기 들어서면서 ‘세계 환경수도’ 또는 ‘태양의 도시’로 소개되는 도시가 된 것이다. 그 도시를 한국인이 지겹게 찾아가나 보다.


기존 건물과 지형을 그대로 살린 프라이부르크 시의 신도시 보봉은 프랑스 주둔군이 철수한 자리였다. 승용차의 통행을 제한하는 야트막한 단지는 태양광 패널로 지붕을 덮었고 많은 건물은 내부의 에너지를 밖으로 빼앗기지 않는 이른바 ‘패시브하우스’로 지었다. 건축비가 보봉만이 아니다.

또 프라이브르크만도 아니다. 태양이 우리보다 강하지 않는 독일에서 도시를 재개발한다거나 신도시를 분양하려면 태양이나 바람, 또는 지열, 다시 말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에너지만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녹지를 만들 뿐 아니라, 빗물을 지하로 스며들게 유도하고 곳곳에 습지를 만들어 재해에서 완충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런 노력이 없이 조성한 마을은 시민에게 외면되기 때문이다.


독일 반핵운동의 역사는 눈물겨웠다. 핵발전소가 예정된 부지의 나무 위에 올라가 몇날 며칠 내려오지 않는 시위를 벌였고 핵폐기물을 실은 기차가 지나는 선로의 레일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는 저항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시민의 뜻을 존중하기로 한 정부는 핵발전소의 계획을 중단했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독일 못지않게 반핵운동의 역사가 순탄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시방 핵발전소 신규 부지를 확정지었다.

서류 위조를 통해 주요 부품이 납품되는 비리가 구조적으로 투명하게 개선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설계 수명을 다한 핵발전 시설을 무리하게 연장해 사용하려 들고, 삽으로 퍼낼 수 있는 연약한 바위에서 하루 수천 톤의 지하수가 흘러나와도 천년고도 경주에 핵폐기장을 짓고 있다. 그뿐인가. 핵발전소 추가를 전제로 강행하는 초고압 송전탑은 땅을 지키려는 밀양과 청도의 주민을 죽음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전문가의 엄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환경단체가 발표한 자료는 국토의 5퍼센트만 태양광 패널로 덮어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기를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밤에 태양빛이 없고 흐린 날 약하다. 밤이든 낮이든 변하지 않고 소비하는 전력은 화력이나 지열로 충당하고 낮에 태양으로 발전한다면 국토의 2퍼센트만 덮어도 충분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도시의 주차장과 도로, 지붕이 넓은 관공서와 학교, 교회와 창고를 활용하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론과 실질적으로 살펴보아도 우리나라는 태양으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그런 시설이 도시와 시골마을, 도시의 전력선이 닿지 않는 섬마을에 충분히 설치되지 않는 건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권에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정권이 폐쇄하기로 한 핵발전소를 슬며시 연장하려던 현 메르켈 정권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유권자의 철저한 외면을 받은 독일은 유권자를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 점에서 독일과 크게 다르다.


지난달 30일에서 12월 1일, 전국에서 2천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희망버스’로 밀양을 찾았다. 송전탑과 송전선이 지나가면 수많은 땀과 정성이 어린 농토는 헛것이 되고 마을은 암으로 고통 속에 버림받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공감한 참가자들은 자식에게 물려줄 땅을 지키려는 밀양 주민들과 한마음이 되어 “우리가 밀양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부둥켜안은 뒤 돌아갔다. 이제 그들이 밀양의 주민이 되어 목소리를 내야 할 차례가 되었다.


태양의 도시는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수많은 피와 땀, 그리고 희생과 호응,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을 감동시키고 정치권을 흔드는 목소리가 있어왔기에 오늘의 프라이부르크가 세계가 주목하는 ‘환경수도’가 되었다. 멀리 안면도에서 굴업도, 그리고 부안을 거쳐 밀양과 청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적지 않은 피와 땀, 그리고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정치권을 흔들 목소리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겨울철 자신의 집에서 외투를 입고 지내는 독일인은 겨울에 반소매 차림인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핵발전소 뿐 아니라 화력발전소까지 줄이려면 후손이 감동할 수 있는 행동으로 태양의 도시를 준비해야 한다. 스스로 행동할 때 목소리는 높아진다. 감동은 수많은 유권자로 번져간다. 그래야 정의감 없이 핵발전을 옹호하는 언론은 핵발전과 더불어 도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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